모든 이가 슬펐으나, 그 누구도 서로의 슬픔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때로 누군가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혹은 아무도 나의 슬픔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또 아무리 이야기해도 나의 슬픔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나 우리는 모두 슬프기 때문에 타인의 슬픔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는 존재다. 행복이 아니라 슬픔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애석해할 필요는 없다. 행복만큼이나 기쁨만큼이나 슬픔도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슬픔은 고통에 가깝다. 통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감각이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에게 통증을 가져다 줄지 아직 알지 못한다. 경험해 보고서야 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그 통증의 무서운 몸부림을 알게 된다. 그제야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노력을 시작하게 된다. 나 자신이 무너지는 일은 가장 고통스럽다. 타인에 의해 무너지고, 꿈에 다가가지 못하여 무너지고, 고독하고 외로워 무너진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경계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직접 다가가기도 한다. 꿈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하여 슬픔은 우리에게 인생에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일러준다. 사랑하는 사람, 나 자신, 자유, 물건, 장소, 추억들 까지도. 쉽게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찾고 또 지켜나간다. 그러므로 슬픔은 희망을 암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숱한 슬픔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만큼 희망을 자주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없이 연약한 존재가 되어 살아가는 일에 영영 의지를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은 결코 혼자 힘으로 품지 못한다. 희망의 다른 말은 아마도 사랑이리라. 슬픔을 어루만져 주는 것도, 슬픔을 희석시키는 것도, 슬픔을 희망으로 치환해 주는 것도 모두 사랑이 하는 일이리라.
슬픔을 안지 않은 이가 없다.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곳에 있다. 슬픔은 결코 섣부르게 잊을 수 없으므로 사랑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슬픔은 어떤 것도 사소하지 않으므로 사랑은 섬세해야 한다. 슬픔은 부름이므로 사랑은 응답일 것이다. 슬플 때 사랑을 잊지 않아야 하며 사랑은 슬픔을 잊지 않아야 한다.
삶이 이토록 복잡하게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토록 다양하게 슬픈 이유는 결코 사랑을 잊지 말라는 당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