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써야 한다면 그것이 내 안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내 밖의 것은 나의 것이 아니므로 나의 글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한 줌의 슬픔이, 더 큰 우울이, 권태와 버무려진 나약함이, 어떤 분노 같은 것만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공백이 있다. 그것을 밖으로 꺼내어도 될까. 긴 시간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다. 뭔가 감추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고독한 일인가. 그러나 고독한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니다.
고독은 잔잔한 물결처럼 때로 묵직한 파도처럼 그렇게 밀려온다.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서 파동을 일으키며 고저를 달리 하는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조금 마모되어 가는 것이다. 마모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시간이 지나 마찰에 의해 모양이 변한다는 진실 혹은 사실이다. 나는 아마 그 고독의 파문에 의해 착실히 노화되어 간다. 변해버린 내 모습을 문득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나는 나이 들어 있었고, 앞으로 고독이 더 자주 들이치면 나는 더욱 노화할 것이다. 고독사라는 말은 어쩌면 죽음에 딱 알맞은 말이 아닐까.
고독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불쌍한 처지인 것처럼 보이나 고독을 느끼지 않는 자가 없으니 실은 평범한 것이다. 이를테면 마음속 공백 같은 것이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화해와 분노들이 소용돌이 치며 흘러가는 동안에 마음에 생긴 균열, 아마도 싱크홀 같은 모양일까. 그런 구멍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 공백 사이로 바람이 차게 흐르고 파도가 인다. 그렇게 외로움과 쓸쓸함을 안다.
외롭고 쓸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하여 모든 타인은 저마다 안쓰럽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처럼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따로 구별할 필요가 없이 모두가 불쌍할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환한 빛 아래 하나하나 전시하듯 꺼내어 놓을 수 없다. 그리하여 고독하고, 그것을 깨달을 때마다 늙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