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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진경 Oct 18. 2024

수영감각

 최근 1년 만에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나에게는 지난한 수영의 역사가 있는데, 그 시작은 회사를 다니던 시절 시작한 수영 강습이다. 당시에는 자유형 숨쉬기를 깨우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사는 일 무엇이든 마음대로 잘 되지 않던 시기였던지라 시작부터 난관이었던 수영이 마뜩잖아 금세 그만두고 말았다. 두 번째 수영 강습은 퇴사한 이후 아파트 커뮤니티에 있던 수영장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전의 구립 수영장보다 강습 인원이 적어서 꼼꼼하게 시간을 들여 배우다 보니 일주일 만에 숨쉬기를 터득했다. 숨쉬기만 터득해도 많은 일들이 자유로워졌으므로 나는 금방 수영에 재미를 느낄 수 있었는데, 얼마 안 가 아파트 커뮤니티 재정 악화로 수영장이 휴관을 하게 되면서 자유형도 제대로 마스터하지 못한 채 끝이나 버렸다. 세 번째는 아파트 근처 구립 수영장에서였다. 숨쉬기나 자유형 초보를 배워둔 덕분에 얼마 안 가 드디어 자유형과 배영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강습이 쉬는 날에도 수영장에 나가 수영 연습에 열중이었는데,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며 또 기나긴 휴식기가 찾아왔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부터 나는 체력도 올리고 자유형, 배영을 심도 있게 배우며 마침내 1000m씩 수영하는 게 가능해졌다. 내가 처음으로 운동에 재미라는 것을 깨우친 계기였고, 연습이 가져오는 성과에 대해서도 차츰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영이 얼마나 재밌는 운동인가를 매일 남편에게 설파했고, 기어코 남편도 수영에 끌어들여 함께 수영장을 다니며, 매일 물이 잘 안 잡힌다는 둥, 발차기가 부족하다는 둥, 서로의 수영 폼을 봐주며 수영에 열광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청주로 이사 오면서 또 잠깐 쉬었다가 다시 수영장에 나가게 되었는데, 올림픽 국대 출신의 어마어마한 경력의 선생님께 배우기 시작하면서 수영의 원리와 자세에 대해 더 꼼꼼히 알게 되었고, 수영은 마침내 인생의 반려 운동이 되었다. 땀범벅이 되지 않아서 좋았고, 물 위에 둥둥 떠있는 자유로움도 좋았다.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유려한 몸짓이 아름다웠고, 여전히 접영이라던가 턴, 다이빙, 구조 수영 등 배울 것이 무궁무진한 것도 즐거웠다. 체력이 더욱 상승하고, 남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일도 가끔 생기면서 성취감과 보람을 동시에 느꼈다. 무슨 운동이든 그런 재미를 느끼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중도 하차 했었는데 드디어 수영에서 그런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겨울이 오면서 잠시 쉬었던 수영이 어쩌다 보니 1년이 지나버렸고 점점 수영이 고파 참을 수 없게 되어 또다시 수영장에 등록했다. 긴 휴식기를 가졌던 대가는 혹독했다. 한 바퀴(50m)를 돌았을 뿐인데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팔과 다리가 아파왔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폼이 모두 무너져 수영을 하는 모습이 볼품없게 느껴졌고, 언제 또 연습을 거듭해 1000m 수영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다. 모든 일이 그러하지만 특히나 몸으로 하는 일은 너무나 정직해서 편법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다. 성실하게 수영장을 다니면서 체력을 기르고 폼도 하나하나 다시금 수정을 거듭해 나가야 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 신체 능력 내에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운동이다. 운이나 경제적 여유 같은 것보다 스스로가 가진 능력치와 성실함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진다. (생각해 보니 경제적 여유가 생기며 1:1 강습을 통해 더 빠른 성장은 가능하겠다. 아무튼,) 그 진실한 성장을 맛본 사람들은 결코 운동을 멈출 수가 없다. 목표가 심플하고, 방향성도 확고하다. 얼마나 고마운 삶의 방식인가. 삶에서 이토록 순도 높은 성장과 간소한 목표를 가질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인생을 환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수영을 떠올린다. 이를테면 탈출구 혹은 배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삶의 진실성을 떠올릴 만한 수단을 갖는 것이 이롭다. 그렇지 않으면 뼈아픈 좌절만이 삶의 진실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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