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대학교 앞 골목에는 오펜바흐라는 이름의 술집이 하나 있었다. 고작해야 당근이지 따위의 이름이 난무하는 그 길 수많은 술집 중에 있었던 그곳. 그렇지 않아도 늘 어둡고 결핍한 그 밤거리에 오펜바흐는 더 어둡고 눅눅하고 누추하기만 한 곳이었다. 안주라고 시킬 것도 마땅치 않았는데, 언젠가 배가 고파 시켰던 돈가스는 도대체 언제부터 그 술집 냉동실에 있었을까 싶은 말라비틀어진 것이었고, 그 이후로는 마른안주 외에는 쳐다도 보지 않게 되었다. 동네 다른 술집에 비해 저렴한 소줏값 덕분에 손님이라고는 고학번의 공대 복학생 밖에 없었던 곳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에 왠지 모를 애정을 갖고 있었다. 술집의 이름이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아닌 오펜바흐라는 사실이 퍽 낭만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사장님은 대학가 술집임에도 말수가 없고 그리 바지런하지도 싹싹하지도 않았다.
나의 감성이라는 것은 아마도 그 시절부터 궁핍하고 초라한 처지에도 애정하는 작곡가 이름을 내건 술집 같은, 돈벌이는 크게 개의치 않아도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하는 그런 풍경에 푹 절여져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07학번인데,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 세상에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고, 스마트 폰도 등장했다. 취업이 잘되던 호황기의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문화적, 경제적 혜택을 받으며 청춘을 보냈음에도 나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필름카메라를 한쪽 어깨에 메고 혼자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간다던가 구례나 오대산 같은 지방으로 혼자 여행을 다녔다. 옛날 노래를 듣고, 산울림의 노래 <회상>을 핸드폰 컬러링으로 해두던, 그저 그런 촌스러운 사람이었다.
사람은 모두 변하고, 나 역시 변해가지만 촌스러운 사람인 것은 여전하다. 그 시절을 10년도 넘게 지나왔건만 한번 산 휴대폰은 5년 넘게 사용하고, 여전히 필름 카메라를 팔지 않았고, 옛날 노래를 듣고, 연필을 사모은다. 어쩌면 변하지 않기 위해 내가 지켜온 모습인지도 모른다. 유행이니 최신이니 하는 것들은 금세 변하니까 변하지 않는 고유한 것을 간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남들 다 하는 것도 따라가지 못할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지금의 내가 싫지 않다.
누구나 자기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며 살아간다. 내 안에 가장 보호하고 싶은 것, 훼손하고 싶지 않은 것, 자신을 자신으로 만들어 주는 고유한 것들을 말이다. 때로는 찰나였던 풍경 하나를 소중히 간직했을 뿐인데도 한 사람의 아우라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 의미를 채 알지 못하여도 괜찮다. 그 의미를 찾아 대답하기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나다운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그 의미에 대해 조금씩 확인하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당신을 당신으로 만든 풍경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