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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Nov 07. 2019

(육아)전쟁의 서막

#15 너를 만나기 위해 이 섬으로 왔을까

치열한 전장에 나가기 전의 장수가 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당분간 나는 글은커녕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들만 겨우 충족시키며 지내게 될 테니까..


고작 여기까지밖에 못쓰고 전장으로 오게 됐다. 임신 39주 0일이었던 지난 8월 2일, 나는 3.4kg의 남자아기를 낳았고 2주간의 산후병동 생활을 보낸 후 친정에 머물렀다. 하루에 겨우 한두 문장씩 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이마저도 친정엄마 없는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사치가 될 것이다. 만삭으로 숨쉬기 힘들고 소화도 안될 때는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니 맘껏 즐기라"는 '선배맘'들의 충고가 그렇게 듣기 싫더니, 이제는 그게 무슨 말인지 뼛속 깊이 체감하고 있다.


출산예정일을 딱 일주일 앞뒀던 새벽, 배뭉침에 잠을 깼다. 34주부터는 배가 수시로 뭉치곤 해서 대수롭지 않게 다시 잠을 자려했는데 꽤 규칙적인 간격의 수축이 심상치 않아 빠르게 샤워를 끝냈다. 진짜 출산이 임박했을 때의 진진통은 '기차가 배를 밟고 지나가는' 준의 통증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왔기에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쓰나미가 몰아치길 기다렸지만 그만큼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퇴짜 맞을 생각으로 혹시나 하고 산부인과에 갔는데 양수 터진지도 몰랐냐며 바로 입원했다. 이때부터 속전속결, 진통을 측정하는 그래프가 막 최고치인 100을 찍고, 그 기차가 배를 밟고 지나가는 극한의 고통을 2시간쯤 견뎠을까. "진행이 빨라 무통주사 없이 낳자"는 담당 의사의 청천벽력 같은 선언과 함께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분만실로 옮겨졌다. 경험자들에 의하면 '항문에 수박이 낀 느낌'이라는, 너무 초현실적이라 믿기 어려웠던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몸소 체험하고서야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출산의 고통을 표현한 그림. 저 땅콩엄마의 적나라한 상황, 딱 저랬다.


"아빠, 들어오세요!"


분만실의 부름에 남편이 누가 봐도 오열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 모습에 방금 전까지 생사를 오가던 고통 속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옷 박스 2개를 들고 홀로 제주도에 내려와 독거노인이라 놀림받던 노총각의 설움을 딛고 41세에 꿈에 그리던 자식을 얻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이렇게나 우는 아빠는 그동안 없었는지 분만실의 모두가 당황했다. 이후에도 남편은 첫 예방주사, 첫 터미 타임(목 가누기 연습) 때 또 눈물을 흘렸다.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2차 출산에 버금가는 배변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었다. 자연분만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변기에 앉아 힘을 줄 수도, 안 줄 수도 없는 혼돈의 카오스. 똥은 왜 제왕절개로 꺼낼 수 없는지 그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이밖에도 3시간마다 신생아실에서 나를 찾는 수유 콜(모유수유를 알리는 전화), 아직 젖을 잘 물지 못해 잠들기 일쑤인 갓난아기와의 씨름,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젖몸살까지 겪고서, 과연 회복의 시간이 맞는지 의아한 산후조리를 마무리하고 퇴원했다. 집에 와서 진짜 전쟁의 서막이 오르자 그게 호강이었음을 알았다.


1~2시간마다 깨서 울어재끼고 밤에는 안고 돌아다녀야만 잠이 드는 30일 아기를 들고 서서 잠이 드는 나날의 연속. 수면시간이 부족해 비몽사몽인 데다가, 아기도 나도 어설픈 수유로 상처투성이가 된 가슴 때문에 젖 먹이는 시간이 소스라치게 공포스러웠다. 그렇게 눈물바람으로 어찌어찌 50일을 버티니, 아기의 수유 텀과 수면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숨구멍이 트이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마음이 여려 아기를 안는 것조차 잘 못하던 남편도 여유가 생겼다. 아기를 재울 때 입으로 '쉬'하는 소리를 내다가 자기가 쉬 마렵다고 화장실로 달려가고, 목욕시킬 때마다 온몸이 땀으로 젖는 어설펐던 초보 아빠의 시간도 이제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다.


저 작은 손에 손톱도 있다니...모든 것이 기특하다.


내일모면 아기가 백일을 맞는다. 이제 통잠(밤에 수유 없이 아침까지 잠)도 자고, 낮에는 안아서 달래주지 않아도 혼자 울음을 삼킬 줄 아는 등 제법 기특하게 자라고 있다.


잠든 아기를 볼 때마다 내 인생에 절대로 없을 것 같았던 결혼과 출산, 그로 인해 받은 이 크나큰 선물에 새삼 놀랍다. 나는 남편과 아이를 만나려고 이 섬에 온 것일까. 병원도, 교육시설도 육지보다 부족한 이곳에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니, 보다 솔직하게는 나 자신과 일만이 삶의 중심이었던 지난날이 그리워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온종일 육아에 바칠 수밖에 없는 생활... 아기가 잠이 들고서야 남은 반찬에 비빈 밥을 입인지 코인지로 밀어 넣으며 여러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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