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에 좋은데이
오늘은 2025년 03월 08일 세계 여성의 날.
수채구멍에 간신히 걸린 불어 터진 밥알도 아까운 인간이 꾸역꾸역 기어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 목소리로 외치는데도 기어이 집구석으로 돌아갔다.
아... 저런 인간도 다리 뻗고 자다니 세상 참 너무 험하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견딜 수 없는 날이었다.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간 유가네 닭갈비에서 카스에 좋은데이로 기세 좋게 소맥을 말아마셨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목마름이 얼마쯤 가라앉는 느낌.
그래 이 느낌을 얼마나 좋아하나. 아니 사랑했나.
그래 나는 한 때 술을 꽤나 사랑했던 술꾼이었지.
아련하게 떠오르는 조작된 아름다운 순간들이 둥둥 떠올랐다.
아니 뒷산에서 안개가 스멀스멀 내려오면 어떻게 술을 안 마셔요?
그래 술은 낮술이지
아니 비 오는 오후에 한계령을 들은 날 어떻게 맨 정신으로 해 지는 시간까지 기다려요...
뭐 그런 시시껄렁한 지나간 시간들을 이야기하다 아 그래 술 얘기를 써볼까 까지 닿았다.
도통 아무것도 못쓰고 있었다. 한 계절이 지나가도록 고여서 썩어가던 나는 오랜만에 반짝 살아났다.
역시 카스엔 좋은데이지. 비율은 손맛이고 이 비율은 그래 너한테 배웠는데 어쩌고는 집어치우고,
맛있다.
마시던 쪼가 남아 그냥 집에 가기 싫지만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
괜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생귤탱귤 제로까지 하나 사 먹고 집회용 가방을 고쳐 매고 기어이 집에 온다.
세상은 너무 흉흉하고 나는 너무 비루하고 고단하다.
그래 뭐든 미친 흥에 취해 몰두할만한 게 필요하다.
아직 술이 덜 깼으니 술 얘기를 시작하기 이보다 더 좋은 시점이 어디 있을까? 그치?
한 때의 순정으로,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