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엔 이야기가 있지
꽃그늘 아래 막걸리를 마시던 우리는 그다음 어디로 갔을까.
부산시 해운대구 청사포, 아주 작은 바닷가 마을.
신시가지 개발이 되고 달맞이 길 언덕 아래 아직도 그대로였던 바닷가 마을.
동해남부선 폐선구간에 아직 기차가 다닐 때,
청사포에 유일하게 있던 양방통행이 안 되는 좁은 길에 있는 철도건널목에 진짜 기차가 다닐 때,
마을버스 2번을 타고 종점에 도착하면 청사포 포구였다. 있어봐야 조개구이집, 장어집이 전부 일 때 포구 가운데 작고 예쁜 가게가 생겼다. 모리.
슬쩍 밀고 들어가니 가게를 얼마나 공들여 손수 꾸미셨는지 구석구석 애정이 그득한 게 보였다. 작은 어항을 향해 밖으로 열리는 창이 있는 2층 창가 자리에 앉으면 어쩐지 가슴이 시원했다. 작은 화로에 숯이 들어있고 꼬치구이가 주 메뉴였다. 해산물과 돼지고기가 얼마나 질이 좋은지 화로 위에서 연신 구워지고 날름날름 잘도 들어간다. 술도 같이 술렁술렁 들어가지.
우리가 한참 모리를 참새방앗간처럼 들락거릴 때는 한적한 어항에 혼자 도드라지게 예쁜 가게였다. 집 가까이 이런 멋진 곳이 있다니. 퇴근길에 청사포에 들러 술을 마시면 2번 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 뒷날 아침 약간 부끄러운 모양새로 2번에서 내리면 바다는 어쩜 그렇게 코앞에서 반짝거리나. 등대는 우뚝하고 반짝거리는 윤슬, 파도, 가슴이 툭 터질 것 같은데 차를 끌고 출근을 해야지. 아이고 내 팔자야.
고모도 모시고 가고, 친구들도 돌림노래처럼 부르고, 멀리서 언니들도 왔다. 청사포 방파제를 느릿느릿 걷다가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우루루 들어가기도 했다. 메뉴 도장 깨기를 하고 술장고를 앵꼬내고 같은 자리에서 테이블을 세 번 갈고 삼차를 가는 허랑방탕한 세월, 사이사이 웃음이 있고, 친구가 있고, 술이 있고 삼국지가 별 건가 뭐. 이런 게 도원결의 아니겠음? 호연지기를 기른다.
지금은 없어진 메뉴 삼겹덮밥이 진짜 되게 맛있었는데. 사장님은 오늘 잡은 거라고 데친 군소를 내어주시기도 했다. 참! 옛날 모리에는 메뉴에 초밥도 있었어. 마음 무거운 날 친구에게 오라 해놓고 청사포로 퇴근을 하고 창가 자리에 앉아 멀리 여행온 듯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어째 저째 또 살아갈 기운이 났었다. 우리가 한 때 너무 사랑했던 모리.
지금 모리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집이다. 어느 핸가 KTX 매거진에 실리고 사람이 많아졌다. 내가 사랑하는 동네 맛집이 사랑을 받으니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 그러다 입소문을 타고 널리 널리 유명해지더라고. 웨이팅이 길어 자주 갈 엄두를 못 낸다. 그래도 가끔 가면 여전히 또렷하게 맛있는 고기, 기본찬에 나오는 곤약조림도 여전하다. 십 년이 지났는데도 모리에 새로운 친구들을 데려가면 감탄한다. 더 이상 2층 창은 밖으로 열리지 않지만, 사람이 바글바글 하지만 작은 어항이 바라다보이는 바다 마을의 정취는 누가 봐도 반하기 딱 좋으니까.
그 사이 동해남부선은 폐선이 되고 복선화 전철이 개통됐다. 폐선 구간은 그냥 좀 있다 이제 관광열차가 다닌다. 청사포로 내려가는 왕복 4차선 도로가 생겼고 모리 앞 청사포 어항에서 고스란히 눈에 들어오는 등대, 이제 바깥쪽 방파제는 연장 공사를 마쳤고 길어진 방파제를 좀 더 걸을 수 있다. 방파제를 주욱 걸어 끝에 도착해 건너다보면 항구 저 편 조막만 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기대 서 있는 것 같다. 모리 옆에는 제일 좋아하는 커피집 디아뜨도 있다. 흐뭇하게 바라다본다.
저기서 한참 술을 마실 때 나누던 이야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 간극만큼의 이야기. 그 이야기에 홀려 여기까지 흘러 흘러 살아왔다. 아마 이야기가 없었다면 나도 없겠지. 참 다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