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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헌나8 주문,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

by 경주씨

4월 4일 파면의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다들 이른 기상을 하고 단톡은 조금 일찍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와... 무슨 일이 되겠나. 다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불안초조와 기대를 한 줄 한 줄 보태며 함께 시간을 버텼다. 드디어 헌재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착석, 문형배 소장님의 주문 낭독이 이어졌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너무나 당연한 저 한 줄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애태우며 외쳐왔나. 울컥.


지난겨울이 봄이 되도록 함께 파면 시위에 참가한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팟캐스트 여둘톡을 같이 듣는 톡토로로 처음 만나 각종 이야기를 나누며 깊어진 사이.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서 그럴까 대화는 막힘 없이 흐르고 그 끝에는 정치도 있었다. 우리는 같이 분노하고 광장으로 나섰다. 조금씩 다르더라도 그 다름을 앞에 두고 서로의 견해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얼마나 짜릿하냐고! 정치얘기 잘못 꺼내면 니는 애미애비도 없나 소리가 나오기 일쑤인 경상도 한가운데서 말통하는 친구들이라니. 같이 행진하며 외치는 탄핵과 파면, 해체의 언어들은 우리들 사이의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같은 일을 도모한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무언가가 되어 사이를 매웠다.


한겨울 차가운 아스팔트에 함께 버티던 사이가 어쩌다 봄날 평일 집회정식의 멤바까지 오게 된 것일까. 진짜 구비구비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3월에는 끝이 나지 않을까 했더니 내란수괴가 법망을 흔들고 탈옥을 하고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주말에만 이어지던 부산집회는 평일집회로 이어졌다. 평균 주 4회 날은 점점 봄으로 피어나 어느 날은 서면로타리 한가운데 목련이 활짝 폈더라.

"씨발 목련이 핀다 목련이 피도록 이게 무슨 지랄이고!!!"

행진 중에 멀쩡한 여자사람의 매일 다른 욕을 들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거 접니다. 네네.

왜 우리가 꽃이 피는 걸 보고 아름답다 느끼는 순간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나. 국민이 이렇게 계절이 지나도록 길바닥에 나와 고래고래 외치는데 좀 들어 쳐 먹어라 제발.


헌재의 선고 기일이 발표되고 우리는 약속했다. 파면의 날은 파티다!! 다른 경우의 수는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최소한 그래도 이어져온 민주공화국에 대한 신뢰와 여태 길바닥을 누비며 다져온 연대와 시민의 힘을 믿었다. 반대의 경우라면 87 민주항쟁의 꼴을 다시 만나는 수뿐이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타는 목마름으로>를 들으면서 말년 시인의 변절이 뼈아프다. 사람은 죽고 없어도 노래는 살아남아 다시 광장에 돌아왔구나, 이게 무슨 난리통인가 싶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의 청년들이 다시 돌아온 광장에서 부르는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한 톡토로님이 본인 집을 기꺼이 열어주셨다. 시간은 4월 4일 퇴근 후 우리는 각자 싸들고 온 것들을 짊어지고 속속 모여들었다. 그렇고 모여든 각종 주류와 먹거리들.


술이 8종이네???

아익후 이건 정말 8:0 이네.

흡족.


한 톡토로님은 숙취 전, 중, 후 먹는 보조제를 인원수만큼 챙겨 오셨더라. 집에 들어서자마자 손에 쥐어주는 알약과 물. 얼마나 다정한 사람들인지 같이 오래오래 먹자고 약까지 먹인다. 일단 약을 먹었다? 그럼 어째 술을 먹어야지.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술을 안 마시거나 혹은 가끔 어쩌고였는데 그런 게 어딨어. 오늘은 마시자. 너무너무 즐거웠다. 다 같이 한 계절 넘도록 개고생 했던 사이. 백분토론이 시작되고 활짝 핀 유시민의 얼굴을 보며 우리는 또 얼마나 즐거웠는지. 저거 보라고 유시민 안색 보라고 ㅋㅋㅋ 다 같이 백분토론을 보자였는데 유시민과 조갑제는 평온하게 얘기를 나누는가 보다 하고 우리는 부어라 마셔라 했다.


아침이슬이 원래 투쟁가는 아니었다고 했다. 광장에서 사람들이 같이 부르다 보니 투쟁가로 거듭났을 뿐이라 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투쟁가가 있다. 이대 사태에서 처음 불렸던 다만세. 다만세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투쟁가로 거듭나고 구축 아파트와 신축 아파트가 어울리고 위플래쉬 가사는 완전 구호버전으로 먼저 배운 것까지 얘기는 또 얼마나 많고 많나. 서면로타리를 가득 채웠던 인파와 큰기아저씨의 힘찬 날개와 깃발의 연대는 또 어떻게 잊나. 서울이 아니어도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는 그 절절한 마음들이 우리 안에 다 있다. 그리고 송금계좌 젤 위에 뜨는 김기영 씨 까지도. 아 근데 그거 아심미까? 민중의 노래 후렴구는 후크송이다. 나 진짜 수능 안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째 절절한 마음으로 시작한 술자리가 흥이 과해 우리가 몇 시까지 떠들었는지 모르겠다. 독한 술을 오랜만에 마시다 나는 정신줄을 놨다. 간이 이 인간이 돌았나 할 정도로 마셨다. 아침에 눈뜨고 보니 낯선 천장이다. 친구들 얼굴을 보면서 머쓱한 웃음을 짓는데 간밤이 어찌 흘러갔나몰라. 원래 이 글은 토욜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써 둔 얘기가 있지만 어째 타이밍상 3.8 여성의 날에 빅엿을 먹고 술 마시다 아 술 얘기를 쓸까? 했으니 파면의 날 음주 얘기를 쓰는 게 맞으니까. 숙취와 이거 저거 기타 등등에 마음속 순서가 조금 밀렸을 뿐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갈 길 멀고 해야 할 일 많다. 대선도 있고, 깜빵갈 사람들 줄줄이 가는 것도 지켜봐야 하고 그러다 또 즐겁게 술 마실 자리가 있으면 그날도 마셔야지. 그때까지 스쾃 열심히 하고 혈당관리 열심히 해서 건강하게 한 잔(???) 마시겠어!! 그래도 꽐라는 되지 말자.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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