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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Oct 13. 2019

목공 교재 제작

나는 왜 목공 교재를 만들었나?


 2016년에 인도네시아에 와서 4년째 아이들에게 목공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열심히 커리큘럼을 짜고, 수업 준비도 많이 해서 수업에 들어갔지만, 아쉽고 부족한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인도네시아 아이들과 나 사이에 공감대가 거의 없다는 점. 밑바탕에 깔려 있는 기본 상식과 같은 것들이 공유되지 않았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간단한 것 하나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이를테면 나는 목재를 결합할 때 이음새에 틈이 생기지 않게 딱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1~2mm 정도 틈이 무슨 대수냐고 생각한다. 약간의 틈은 구조에 따라서 가구의 내구성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약간의 틈 때문에 가구가 흔들리기 시작해서 어느 날 와르르 무너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차치하고라도, 우리 학생들은 정밀함, 비례와 비율, 심미성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안 쓴다. 평생 그런 것에 신경을 써 본 적이 없다. 우리 학생들은 정규 교육은커녕 삼시세끼 끼니 조차 제대로 못 챙겨 먹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생각하는 가구는 내가 생각하는 가구와 다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가구에 대한 인식 차이는 앞선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이들에게 가구는 딱히 아름다워야 할 필요가 없고, 아귀가 딱 맞을 필요도, 마감이 매끈할 필요도 없다. 가구의 미적 요소나 마감의 중요성을 입이 아프게 설명한들 그때뿐이다. 아이들은 돌아서면 바로 까맣게 잊어버린다. 어쩜 이렇게 새카맣게 잊어버릴 수가 있을는지, 마치 내가 한 말을 주섬 주섬 뭉쳐가지고는 바닥에 비둘기 밥으로 뿌려버렸나 싶을 정도다. 목공 기술을 배우는데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가뜩이나 의지가 부족한데, 공감대까지 없으니 어떻게 수업을 풀어나가면 좋을지 너무나 막막했다. 


 수업 진행에 있어서 '공감대가 없는 것' 다음으로 아쉬운 것은 언어의 한계다. 목공예는 말이 잘 안 통해도 몸으로 보여주면서 가르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초창기에는 수업을 돕는 통역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통역을 거쳐서 가르치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생소한 내용을 설명하려고 할 때에, 말이라도 통하면 구구절절 알아들을 때까지 길~게 썰을 풀어보겠지만, 학생들과 나는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니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지 강사들을 뽑았는데, 이 현지 강사들은 인도네시아를 잘한다는 것 빼고는 목공 강사로서 강점이 딱히 없었다. 


직접 만든 목공 교재 편집 화면


 새로 뽑은 현지 강사들을 통해 수업의 수준을 향상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이들은 공고 가구학과를 갓 졸업한 철없는 아이들에 불과했다. '리코'와 '젠다'라는 현지 강사 둘을 뽑고 나서 인도네시아에 대한 나의 기대는 더욱 낮아졌다. 그래도 명색이 목공 강사를 뽑는 자리에 목공에 대해서 잘 모르는 아이들이 지원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어디를 가던지 간에 다들 고만 고만하다. 나도 곧 이 곳의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철없는 현지 강사들을 먼저 가르쳐서 어떻게든 이 친구들과 함께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과 나는 공감대도 거의 없고, 언어도 다르다. 거기다가 변변한 참고자료 하나 없이 수업을 진행하려니 체 계가 없어서 학생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다. 그리고 새로 뽑은 현지 목공 강사 '리코'와 '젠다'도 갈피를 못 잡고 학생들을 제 멋대로 가르쳤다. 그래서 결심했다. 목공 교재를 만들어야겠다고. 사실 1년 단위 커리큘럼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매 단원마다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할지 내 머릿속에는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분명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는 것. 


 나는 목공 교재를 만들어야만 했다. 현지 아이들과 같은 문화권에서 살아온 현지 강사가, 현지 언어를 써서, 교재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 내가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현지 목공 강사 채용기'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사실 우리 교재는 학생들보다는 '리코'와 '젠다'를 위해서 만들었다. 우리 학생들은 교재에 관심도 없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는 식이다. 수업 준비물과 작업 순서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목공 교재는 현지 강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참고하는 교사용 지침서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물론 우리 학생들도 가끔 교재를 꺼내보기는 한다. 주로 여백에 낙서를 하는데 쓰기는 하지만. 

 

목공 과정 1년 커리큘럼


 교재의 내용은 아주 심플하고, 실용적인 내용 위주로 구성했다. 처음 두 달 동안 기본적인 수공구를 손에 익히고 나서, 셋째 달부터는 매 달 새로운 가구를 하나씩 완성하는 방식으로 과정이 이루어져 있다. 학생들에게 이론적인 내용을 차근차근 가르치기에는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한계도 있고, 또 우리 학생들은 이론에 취약하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3월에는 스툴, 4월에는 덱체어, 5월에는 문짝 만들기... 이런 식으로 매 달 한 종류의 가구를 직접 만들어 보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온몸으로 느끼고 해결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만약 학생이 중간에 수업을 못 따라오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달에는 가구를 완성할 수 없게 된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서 '아, 의자는 이렇게 만드는구나.' '아하, 테이블은 이렇게 만들면 되는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경험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각각의 가구의 구조를 체득하고 목재의 결합 방법을 반복해서 연습하게 된다. 


2016년 8월, 인스타그램에 쓴 글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맡은 가구는 이쁘게든 못생기게든 완성을 하기는 한다. 어떤 경우에는 완성품이 너무 심하게 못생겨서 보고 있으면 웃음이 삐질삐질 새어 나오기도 하지만,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은 '시작한 것을 끝까지 마무리한다'는 태도 하나는 확실히 배운다. 


 학생들에게 연습할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들은 평생 정당한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 인내심을 갖고 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 때까지 기다려 준 적도 없다. 나라도 이 친구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막 가르치기 시작할 무렵인 2016년 8월에 인스타그램에 썼던 내용을 캡처하여 오늘 글의 마무리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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