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건강, 둘째는 재미
(올해 수영을 배우기 전에) 오랜만에 운동을 다시 시작한 건 지난해의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운동을 다닌 게 언제였더라 하고 곰곰이 생각해봐도 10년이 훌쩍 지난, 그때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바로 수능이 끝나고 시간이 남아돌던 고3 시절. 인생의 커다란 산 하나를 비로소 넘었다는 해방감에 많은 수험생들이 운전면허를 따고 생애 처음으로 헬스장 같은 곳을 가보는 시기였다. 대세에 질세라 나도 동네 짐 회원권을 끊었다. 퇴근을 하고 헬스장에 와서 이어폰을 낀 채 러닝 머신을 뛰는 '어른'을 동경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퇴근 대신 하교를 하면 친구들과 재래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한 시간에 3천 원짜리 노래방에 갔다가 저녁때가 되면 헬스장으로 향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생각보다 헬스장이 재미없어 한 달을 겨우 다닌 기억만이 또렷하다. 그 외에 다른 자세한 내용은 까마득해 이쯤 되면 오랜만이 아니라 옛날 옛적에, 로 서두를 시작 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장기간의 공백을 깨고 복귀전으로 처음 선택한 운동은 다름 아닌 요가였다. 요가 전도사 이효리 씨는 효리네 민박에 나와 부지런히 새벽 요가를 나갔고 이슬아 작가의 인스타엔 물구나무 동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주변에서도 요가의 장점을 나열하며 오랜 시간 학원을 꾸준히 다니던 친구가 있었고 여행지로 발리를 검색하면 항상 요가 클래스에 대한 안내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전 세계적으로 요가 열풍까진 아니어도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노출된 까닭인지 시큰둥하던 내 태도도 말랑해져 마침내 친구가 요가 학원에 가자고 했을 때 내 대답은 퍽이나 자연스러웠다. "응, 그래. 가자"라고. 마치 언젠가 네가 이런 질문을 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건강의 적신호 때문이었다. 독립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깨닫게 된 건 직장, 주거, 건강 문제가 돌아가며 속을 썩인다는 사실이었다. 회사에서 출렁이던 세일즈가 안정되어 이제 좀 한숨 돌리겠다 싶으면 싱크대에서 물이 셌고 집주인과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몸살이 찾아왔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신경 써야 할 게 이다지도 많을 줄이야. 시기마다 떠오르는 각양각색의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일 년이 휙 하고 지나갈 정도였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건 20대에 시간이 지나면 낫던 감기가 이제는 시간이 지나도 잘 낫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자가 치료는 고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가 되어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는 게 가장 고생을 덜 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증상이 보인다 싶으면 식 리브(Sick leave)를 쓰고 부랴부랴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이 커다란 호주 땅에서 나를 돌보고 먹여 살릴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 저녁으로 러닝을 하던 시드니 여성들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 건 그날도 병원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던 때였다.
시드니에서 런너들은 어딜 가나 항상 눈에 띄었다. 동네에서, 비치에서, 오페라 하우스 근방에서, 그리고 특히 하버 브릿지 위에서. 사람이 적은 곳이던 많은 곳이던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호주에서 러닝이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인기 있는 스포츠라지만 신기할 정도로 20-30대 여성의 비중이 높았다. 탱크톱에 레깅스 혹은 낙낙한 반바지, 그리고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편안했고 건강미가 넘쳤다. 씩씩하게 달리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다이어트라던가 라인 교정 같은 것을 위한 운동이 아닌 그저 체력을 다지고 건강한 신체를 위해 달린다는 게 척 봐도 느껴질 정도였다. 출산 이후에도 회사를 다니는 여성들이 많고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 격차가 적은 호주에서 여성들은 경제 주체로써 자신을 돌보고 있었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오랫동안 잘할 수 있는지는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같이 요가를 다니던 친구는 시시콜콜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신이 언제까지 아프지 않고 현업에서 일할 수 있을까라는 다소 뜬금없는 고민이었다. 내가 놀란 까닭은 그가 회사에서 누구보다 일 잘하고 일 좋아하기로 소문난 친구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이건 더 이상 웃어넘길 문제도 남의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병원을 가는 길엔 항상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어디가 크게 아프면 당장 어쩌지, 라는 고민을 나조차도 하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트위터에서 항상 은은하게 리트윗 되던 '거북목 교정', '허리 운동 1분 영상'같은 제목들이 더 이상 잔소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은 아침, 저녁으로 따라 하기 시작했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매주 월요일마다 친구와 핫요가 클래스에 참여했다. 우리는 가능하면 50세, 60세가 되어서까지 일을 하고 싶었다. 여기저기 안 좋은 신호가 오긴 했지만 아직 늦었다고 하기엔 또 한참 이른 나이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원래대로라면 수영 강습받을 시간에 쓰고 있다. 수영 일기를 통해 그동안 수영에 대한 즐거움을 열렬히 고백했지만 얼마 전부터 허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흙빛 얼굴을 한채 병원에 갔더니 지나친 운동으로 허리에 근육이 한껏 뭉쳤으니 일주일간 모든 운동을 금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수영을 빠지는 대신 수액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뒤늦게 물에서 하는 운동의 묘미를 깨닫고 수영을 하는 이유가 첫째는 재미, 둘째는 건강이라고 말했건만 아무래도 첫째는 건강, 둘째는 재미로 순서를 바꿔야 할 것만 같다. 몸이 아프면 좋아하는 수영도 결석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물에서 첨벙이는 대신 집에서 오늘따라 더 그림의 떡 같이 보이는 본다이 아이스버그의 사진을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 좋아하는 일도, 수영도 오래도록 하기 위해 나는 오늘 천천히 숨을 고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