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수영 일기 09화

숨 쉬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자유형에 대하여

by Ronald

얼마 전 한 건축가의 사무소를 방문해 그가 설계한 주요 건축물과 함께 최근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여러 장의 사진과 설계도를 슥슥 넘기며 시작된 설명은 어느덧 40여분을 넘겼고 이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건축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라고 한 참가자가 질문했고 건축가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45도 정도 틀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겼지만 3초 정도 지나자 이내 정답이 생각난 듯, 그는 틀었던 고개를 제자리로 되돌리고 청중들을 보며 이야기했다. "내 감?" 이야기는 이랬다. 지금까지 건축 일을 해오면서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이 과정을 통해 본인만의 감(感)이란 게 생겼다고. 그래서 다른 외부 요인보다는 스스로의 감을 최대한 믿고 따르며 업무를 진행한다는 이야기였다. 연륜이 느껴지는 답변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감이란 건 도대체 언제쯤 생기는 것일까? 3개월? 6개월? 1년? 그것도 아니면 5년 정도는 돼야 뭐라고 말 한마디라도 덧붙일 수 있는 걸까? 아마 목표로 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시간은 커다란 편차를 보일 것이다. 이를 테면 라면을 잘 끓이기 위한 감은 일주일 정도면 충분할 테지만 평생의 업(業)으로 삼은 일에 관해서라면 5년의 실무 기간도 결코 긴 시간은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변수를 대입하다 보면 그제야 감이라는 것도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도 선명하게 형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자유형에 대한 의심이 생겨난 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이제 자유형은 조금 할 줄 안다는 자신감과 함께 나는 모든 에너지를 평영에 쏟아붓고 있었다. 발차기와 스트로크 횟수에 비해 앞으로는 잘 나가지 않는, 그야말로 실속 없는 평영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신기하게 있었다. 2번 정도의 호흡이면 도착하는 자유형에 비해 평영은 10번의 호흡을 한 뒤 도착해도 자유형만큼 숨이 차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잘 나가지 않아 거의 자유형의 5배에 달하는 호흡이 필요했고 그만큼 스트로크나 발차기 횟수도 많았을 텐데 이상하게 호흡이 편안했다. 자유형은 2번의 호흡만으로 빠르게 레인 끝에 도달한 뒤 "하아아아아"하고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면 평영은 10번의 호흡으로 천천히 도착해 "후우... 후우"하면 금방 숨이 차분해졌다.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하단 예감이 들었다.


나는 자유형의 속도가 꽤 빠른 편이었다. 일단 앞으로 잘 나가니 동작에 크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숨이 모자라긴 했지만 어쨌든 중간에 쉬지 않고 레인 끝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꾸준한 수영을 통해, (아마) 폐활량이란 게 좋아진다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평영과 비교해보니 어쩌면 이건 폐활량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혼자 고민을 하다가 역시 호흡법이 문제인가 싶어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숨이 찬 건 아무래도 고개를 들 때 숨을 충분히 들이마시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오른팔로 스트로크를 천천히 하며 고개가 물 밖으로 나와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도 했지만 그것마저도 별 소용이 없었다.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고개가 물속에 있을 때는 코로 숨을 내뱉고 바깥에 나올 때는 쉰다는, 더없이 간단한 이론에 맞춰 자유형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지금은 15M 정도 되는 어린이풀에 있으니 괜찮지만 중급반이 돼서 25M 성인풀에 가면 레인 끝까지 한 번에 가지 못하고 계속 멈출게 뻔했다. 쉬는 시간에 성인풀에 가서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중급반으로 올라가는 날이..!


11월의 첫날, 중급반으로 올라간 나는 기쁜 마음도 잠시, 50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나와 함께 초급반에서 올라온 한 명을 제외하면 같은 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접영까지 배운 상태였다. 하지만 진도보다 나를 움츠러들게 만든 건 모든 사람들이 거의 쉬지 않고 레인을 끊임없이 오간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좀 쉬겠구나 싶으면 길게 늘어서 있던 줄은 어느새 줄어 내 차례가 다가왔고 거의 반자동적으로 출발하면 따라오는 뒷사람 때문에 누군가에게 쫓기는 빚쟁이가 된 것처럼 팔다리를 젓느라 분주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중급반 신고식을 치르는 와중에 어느 순간 나는 쉬지 않고 레인의 끝까지 자유형을 해서 도착하게 되었다. 어라, 이건 뭐지? 내가 자유형으로 끝까지 왔다고? 정신없는 와중에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가 싶었다. 그리고 다시 내 차례가 되어 약간의 얼떨떨함을 갖고 출발했고 또다시 25M를 한 번에 헤엄칠 수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제대로 자유형을 하고 있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내 코에서는 끊임없이 물방울이 나오고 있었다. 성급한 마음이 나를 헤엄치는 동시에 끊임없이 호흡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수영을 시작한 지 2년이 된 친구 하나는 샤워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장이 되어 심박수가 올라간다고 이야기해 나를 웃게 만들었다. 나의 경우는 물에 고개를 넣기 전이 특히 그랬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생생하게 들리던 소리가 멀리서 메아리쳐 들려왔고 당장 눈앞에선 시퍼런 물이 일렁이는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숨을 쉬는 것이 늘 편하지 않았다. "보글..." (3초 정적 후 다시) "뽀글.. 보글.." 이렇게 의식적으로 숨을 내뱉어야만 했다. 그러니 숨 쉬는 게 편할리 없었고 호흡이 불안정하니 자유형을 하다가 숨이 부족해 멈추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속에서 숨을 충분히 뱉지 못하고 고개를 드는 짧은 시간 동안 숨을 들이마시는 것과 동시에 (물속에서 다 뱉지 못한) 날숨까지 하려 한 것이 내 문제였다. 길이가 짧은 어린이 풀에서는 거의 숨을 참다시피 하면 끝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다시 출발하기 전에 숨을 고르는 식으로 나는 부족한 호흡을 메워온 것이었다. 무언가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숨 쉬듯' 한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스스로가 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행위를 빗대어하는 표현이다. 3개월 동안 자유형을 할 때면 얼마나 숨 쉬려고 애를 썼는지 모른다. 물 바깥에서 숨을 쉴 때 호흡하는 것을 잠깐씩 멈추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숨을 들이마시거나 아니면 내뱉거나 한다. 그 사이에 쉬는 공백은 필요치 않다. 그런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호흡법을 나는 3개월 동안이나 물속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숨 쉬듯 수영하기는 고사하고 숨 쉬듯 호흡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호흡을 제대로 하게 되자 스스로 노를 저어 힘겹게 움직이던 뗏목에서 작은 모터가 달린, 모터보트가 된 기분이었다. 비록 모터는 작고 속도는 느릴지언정 지금의 내겐 이것으로도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은 모터는 효율이 좋지 않은 핸드폰 배터리처럼 시시때때로 충전이 필요하다. 가끔은 고장이 난 건가 싶은 정도로 급격하게 잔여 배터리가 주는 날도 있지만 나는 이게 고장 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아직 모터의 크기가 하염없이 작아서 그럴 뿐이다. 하지만 이제 보트의 작동법을 제대로 익혔으니 모터의 크기도 배의 크기도 점차 키워나갈 참이다. 폐활량이나 체력을 운운해야 할 타이밍은 바로 지금일 것이다.


수영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비로소 자유형 호흡법을 익히게 되었다. 3개월이란 시간은 무언가를 완벽하게 몸에 익히기엔 다소 짧은 시간일 줄 모르지만 어떤 것에 대해 의심을 품기엔 충분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아직 다른 사람에게 수영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할 실력은 못 되지만 거의 20여 년 동안 건축을 업으로 해온 건축가가 한 말처럼 때로는 내 감을 믿어보자. 내 감이 어딘가 잘못됐다고 신호를 보낼 때는 한 번쯤 의심해봐도 좋다. 비록 3개월이란 짧은 시간이 쌓였을지라도 우리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어쩌면 꽤 잘 맞기까지 한다.



Rottnest Island, WA, Australia


keyword
Ronald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