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고 있지만 가장 어려운 기술
"엑스레이 보이시죠? 척추가 대나무처럼 일자인 거. 근육이 많이 뭉쳐서 그래요. 이 정도면 전치 2주예요. 나으려면 원래는 2주 동안 가만히 누워있어야 하는데 그럴 순 없으니 3일 동안 수액 맞고 일주일 간 물리치료받으세요. 가만히 앉아있는 건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앉아 있어도 서있어도 누워있지 않으면 허리는 항상 일하는 상태인 거예요. 아시겠죠? 일주일 간 조깅, 요가, 등산, 헬스, 필라테스, 자전거, 수영 같은 운동은 하시면 안 됩니다."
자유형이란 산을 넘고 배영이란 낮은 문턱을 넘어 드디어 평영 강습이 시작된 건 지난달의 일이었다. 수영을 배우면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 나는 항상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하는 평영을 꼽곤 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고개를 들고 커다란 원을 그리듯 천천히 팔을 내저으며 너른 바다를 유영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감탄이 나오는 풍경이었다. 그러다가 한 번씩 개구리처럼 쭉-하고 발차기를 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경쾌한지 그 모습을 나는 꽤 오랫동안 동경해왔다. 뿐만 아니라 평영은 사실상 사용 빈도가 가장 높은 실용적인 영법 아닌가. 그래서 폼이 멋들어진 접영보다 내 마음속 1위 영법으론 항상 평영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친구들과 잔잔한 바다에 들어갈 때면 얼굴을 내밀고 수영하는 것을 혼자 연습하곤 했다. 제대로 평영을 배운 적도 그렇다고 유튜브로 수영 강좌를 시청해본 적도 없었지만 일단 사람들이 하는 대로 비슷하게 팔과 다리를 흉내 냈더니 갖은 노력 끝에 그럭저럭 10미터쯤은 헤엄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상은 도저히 숨이 차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고 반드시 멈춰 서서 숨을 쉬어야 했다. 얼굴이 바깥에 있는데도 그렇게 숨이 차는 걸 보면 어딘지는 몰라도 어딘가 단단히 잘못하고 있는 게 분명 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영 강습을 등록할 때도 평영을 배우면 지난 숨 찬 과거를 덮고 비로소 꿈에 그리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초급반의 대부분이 그럭저럭 배영을 해낸 어느 날 강사는 희소식을 전해왔다. "주말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는 평영 발차기 들어갈게요~"
그런데 대망의 평영 수업은 굴욕적인 시작과 함께 나를 맞아주었다. 그날 강사는 어디선가 파랗고 커다란 정체불명의 매트를 끌고 왔고 바로 그곳에 엎드려 우리는 지상에서 개구리 자세를 한채 발차기를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물속에선 우아해 보이기까지 하던 그 동작이 지상에선 그렇게 우스꽝스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리는 묵묵하게 강사의 말을 따라 동작을 반복했다. 그동안 한 동작으로 보인 발차기는 크게 3단계로 나뉘었는데 (1) 무릎을 아래로 자연스레 굽혀 자세를 잡고 (2) 발 안쪽으로 힘차게 물을 밀고 (3) 양발을 모아주는 것으로 동작을 끊어서 배웠는데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과연 이 동작이 물속에서 잘 나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허공에 대고 발을 차는 건 영 재미가 없어 항상 쏜살같이 가던 시간이 그날따라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은 굴욕의 지상 발차기는 맛보기일 뿐 평영의 진정한 고난은 물에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지상에서 자세를 연습한 뒤에는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했는데 아무리 킥판 때문에 저항이 생긴 다지만 발을 아무리 열심히 차도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고 급기야는 가라앉기까지 했다. 자세가 문제인가 싶어 개구리 다리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고 다리에 힘이 부족한가 싶어 온 힘을 다해 발을 차도 결과는 같았다. 제. 자. 리.
제자리걸음만 하다 보니 몸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발차기에 진전이 있길 바라며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준비운동을 했는데 5분도 안돼서 오른쪽 허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말겠지 하고 자유형을 하는데 이번에는 오른쪽뿐만 아니라 왼쪽, 아래쪽으로 허리 전반이 쿡쿡 쑤셔왔고 통증 횟수도 점차 늘어났다. 큰일 났다 싶어 나는 강습을 마치자마자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결과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일주일 간 수영 금지. 진단을 받고 의사에게 치료 방법을 들었지만 대나무 같이 경직된 허리 엑스레이를 코앞에서 보고 있자니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급기야 나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의사에게 디스크의 가능성을 묻기까지 했는데 다행히 허리 디스크는 허리가 아프지 않고 목 디스크는 목이 아프지 않다는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진료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수영을 하면서 온몸의 근육들이 정해진 역할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단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긴장을 해서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날은 발등과 무릎 뒤의 근육, 엄지발가락과 같이 생뚱맞고도 희귀한 부위가 난생처음으로 아파왔고 이번 요통으로 근육통의 최고봉을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모든 고통은 평영 발차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거의 한 달 지나도록 발차기에 큰 진전이 없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조바심이 생겨 몸에 힘이 더 들어갔던 것이었다. 수영에는 호흡, 스트로크, 발차기와 같은 스킬이 필요하다지만 사실 강사들도 알려주지 않는 최고 난이도의 기술은 바로 힘 빼기의 기술이 아닐까? 굳이 거기에 '기술'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여야 할까 싶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영장에서 '힘 빼기의 기술'이란 강좌가 열린다면 나는 누구보다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