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파란 나무가 흩날리고 있었다. 바람나무였다.
푸른 등대가 안내하는 푸른 언덕에는 바람나무가 서있다. 그곳에서는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뭇가지에 걸려 바람에 흩날리고 이다. 이야기들은 열매를 맺기도 하고 낙엽처럼 떨어지기도 하며 바람을 타고 다른 나무로 날아가거나 허공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이 신비로운 풍경을 보거나 흐드러지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많은 이들이 등대를 찾아 바람나무의 위치를 구한다.
운이 좋아 방문에 성공한 자들은 달팽이 주머니에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재주껏 담아 언덕을 내려간다. 하지만 욕심을 부려 무거운 주머니를 놓치게 되면 그 안에 있던 이야기들이 언덕 아래로 와르르 쏟아져 구역 밖으로 흘러나간다. 그러면 그 이야기는 누가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세상을 떠돈다.
푸른 언덕에는 여러 개의 모래시계가 놓여 있다.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모래시계가 허락하는 시간 동안만 머무를 수 있다. 너무 오래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이따금 이야기의 유혹에 빠져 제때 나무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의지가 단단하지 못한 상태로 찾아오는 자들에게는 등대가 바람나무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
윤이는 한참 동안 바람나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등대를 거치지 않고도 이곳까지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도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그녀는 도와 함께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 이야기도 저기에 걸려 있을까? 누가 가져갔으려나?"
윤이가 중얼거렸다.
도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
"담아가고 싶어?"
윤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 그 안에 갇혀버릴 것 같아. 나중에, 내가 좀 더 단단해지면 그때 다시 올래."
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붉은 하늘이 보이는 쪽으로 쭉 걸어. 붉은 밤 구역에 도착할 거야. 거기서 잠깐 쉬어. 난 여기서 이야기를 좀 듣고 갈게."
윤이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밤? 밤이 있어?"
도는 웃으며 답했다.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거야."
윤이가 살짝 혼란스러워했다.
"여기는 붉은색이 참 많네."
도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붉은색을 좋아해서 그래."
"엥?"
윤이가 되물었다.
하지만 도는 어느새 저만치 푸른 언덕 위를 향해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