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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순 영 Oct 27. 2024

붉은 밤

윤이는 혼자서 붉은 밤의 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붉은 밤은 짙은 향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잠들기 어려운 이들이 찾아든다고 알려져있다. 윤이는 평소 잠드는 데 어려움이 없는 편이었으나 오래 걸어온 탓에 휴식이 필요했다.

"여긴 달이 없네," 

윤이가 혼잣말을 하며 슬몃 눈을 감았다.

"안 보일 뿐이야," 

누군의 대답에 윤이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깜짝이야!"

그제서야 윤이는 그의 곁에 달팽이 주머니를 벤 털복숭이 오소리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오소리는 이미 바람나무를 지나온 것을 기념하듯 모래시계를 가방에 데롱데롱 달고 있었다.

"아, 안녕, 음...그럼, 달이 있는 거야?" 

윤이가 물자 오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달섬이잖아. 달이 없는 곳은 없어. 보이고 말고의 차이일 뿐이야. 언제나 달은 있지만 항상 볼 수는 없지. 안 보이면 그냥 어딘가 있겠거니- 그러려니- 여기는거야."

"안 보이면 불안하지 않아?" 

"가끔 그렇지. 하지만 그건 달의 몫이야. '그러려니' 하는 건 나의 몫이고," 

오소리가 태연히 답했다.

"그렇네."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 이곳에서의 잠은 아주 짙어서 잘 쉬고 나면 기분이 훨씬 좋아질 거야."

"고마워," 

눈을 감자 윤이의 마음이 점차 향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잠이 올까 싶으던 찰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마에 톡톡 떨어지는 물방울에 윤이는 눈을 떴다. 이미 잠의 끝을 알리는 옅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소리도 비슷하니 일어났는지 비옷을 주섬주섬 뒤집어 쓰며 윤이를 바라보았다.

"일어났네. 아마 한동안 니 곁에도 비가 계속 올 거야. 비옷을 안 챙겨왔구나?"

"이제 다른 구역으로 가니까 괜찮아. 덕분에 잘 쉬었어."

윤이가 빗속에서도 여유롭게 웃으며 말하자 오소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천만에. 조심히 가. 좋은 길 되길 바랄게."

"안녕!" 

윤이는 손을 흔들며 답하고 고개를 돌려 하얀 나무 둥치 아래 놓인 이정표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커다랗게 ‘자구도래지'라고 적혀 있었다. 

"바로 곁에 있었네.."

윤이는 미소를 띤 채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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