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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순 영 Oct 28. 2024

안녕, 도

한참 동안 이야기 나누던 윤이와 왜가리 선생님은 동시에 몸을 뒤로 젖히며 숨을 깊이 내쉬었다. 두 사람 사이에 오랜 대화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왜가리 선생님이 부드럽게 묻자 윤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도 이제 슬슬 집이 그립네요."

"좋은 일이네요," 

왜가리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염이씨에게도 전해줘요. 언제든 훌쩍 와도 좋다고. 함께 와도 좋고요. 아, 그리고 이거. 염이씨가 부탁한 구슬이에요. 윤이씨 편으로 보내드리죠."

"네. 제 구슬은 말씀드렸듯이 이렇게 색이 변했어요. 반환 상자에 둘까 하다가 장신구로 만들어봤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괜찮을까요?"

"아무렴요. 고마워요. 저에게도 기념이 되겠어요."

윤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혹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건네주셔도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윤이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책을 완성해서 찾아뵐게요."

"무리하지 말고, 언제든 좋으니 천천히 와요," 

왜가리 선생님은 따뜻하게 당부했다.

둘은 마지막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인사를 나눴다.


밖은 어느새 차가운 공기가 가득했다. 하늘에서는 얼음가루가 나풀나풀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 가루들은 마치 계절의 끝을 알리듯 부드럽게 내려앉으며 땅을 물들였다. 윤이는 잠시 멈춰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운이 좋네. 이 시기에 들렀다 가게 됐구나."

도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도! 보고 싶었어."

"깜짝이야." 

도는 윤이의 목청에 화들짝 놀랐으나 이내 따뜻하게 안아주며 깔깔 웃어보였다. 

"나도 보고 싶었어."

둘은 나란히 서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얼음 가루가 흩날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얀 조각들이 하늘에서 춤추듯 내려오며 그들의 발걸음과 함께 했다. 윤이와 도는 한동안 말없이 나란히 걸었다. 얼음 결정들이 땅에 닿으며 깨지는 소리가 그들의 발걸음과 함께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윤이는 그 순간마다 마음속에서 무겁게 얽혀 있던 감정들이 풀려나가는 듯 상쾌함을 느꼈다. 여기까지 왔구나. 올 수 있었구나. 막상 오고 보니 무거운 일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첫 마음을 내딛을 때까지의 시간을 얼마나 힘겨웠나. 이제는 그 힘겨움도 알아주고 싶었다. 


얼마 후 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만 걸을게. 이제는 내가 가야 할 시간이야."

윤이는 발걸음을 멈추며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도를 바라보았다.  

"함께 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윤이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묻어 있었다.

도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언제나 떠나고 또 돌아오잖아. 그건 네가 알고 있잖아."

윤이는 떠나려는 도의 모습이 이전보다 조금 더 낯설고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네가 곁에 없으면 좀 허전할 것 같아."

"이제 너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 달섬에서 여정을 해냈으니 돌아가는 길도 이제 너만의 길로 만들어봐."

윤이는 발아래를 한참 내려다보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응, 나 혼자서도 괜찮을 것 같아."

도는 윤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럼 난 여기서 작별할게. 네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면 언제든 찾아올 수 있어. 내가 어디에 있든 네가 오고 싶을 때마다 만날 수 있을 거야."

윤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또 만나."

도는 마지막으로 크게 웃으며 윤이 앞에서 천천히 걸음을 돌렸다. 도가 점점 멀어지면서 작은 실루엣으로 변해갔지만 윤이는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자유롭게 마치 바람처럼 가볍고 빠르게 사라졌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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