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09: 한강 러닝]
(치익—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 이제는 기자의 목소리가 마치 마른 낙엽이 굴러가는 듯 바스락거린다. 말할 때마다 잉크가 번지는 듯한 눅눅한 기침 소리가 섞인다.)
“...아홉 번째 기록입니다. 서울 시민들의 안식처인 한강, 하지만 해가 진 뒤의 강변북로 아래는 누군가에겐 거대한 사냥터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제보는 매일 밤 한강 변을 달리던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날따라 유독 시원하게 뚫려 있던 러닝 코스, 그 끝에서 그가 마주한 건 시원한 강바람이 아니라 등 뒤를 파고드는 서늘한 시선였습니다.”
밤 11시 반, 한강 고수부지는 평소와 달랐다. 분명 금요일 밤인데도 지나가는 라이더 한 명, 산책하는 커플 한 쌍 보이지 않았다. 이어폰에서 흐르는 비트 빠른 음악에 맞춰 발을 굴렀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넓은 강변에 뛰고 있는 건 나 혼자뿐이라는 것을.
적막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강 건너 빌딩들의 불빛은 아득히 멀어 보였고, 강물 소리는 유독 짙고 무겁게 들렸다. 불길한 예감에 이어폰 볼륨을 높였지만, 목덜미를 스치는 소름을 떨칠 순 없었다. 결국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집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였다.
음악 소리 사이로,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폰 안으로 스며들었다.
“...아, 아깝다. 거의 다 왔는데 놓쳤네.”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내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도, 라디오도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내 이어폰 주파수를 강제로 가로챈 듯한, 생생한 육성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이어폰을 빼 던져버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길목 끝에 두 개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들은 미동도 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순간, 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걷지 않았다.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네 발로 기는 듯 기괴한 자세로 나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카세트테이프의 잡음이 이제는 비명처럼 찢어진다. 기자의 목소리가 이제는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얇아졌다.)
“...제보자는 죽기 살기로 뛰어 인근 편의점으로 숨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경찰과 함께 다시 현장을 찾았을 때, 그곳엔 제보자가 버리고 간 이어폰만이 놓여 있었다더군요.
(바스락... 바스락... 종이가 접히는 소리)
...내 상태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입니다. 거울을 보니 내 몸이 이제는 입체감을 잃고 납작해지고 있습니다. 피부 위로는 수많은 활자가 문신처럼 돋아나고 있어요. ‘살해’, ‘실종’, ‘익명’... 내가 적었던 단어들이 내 몸을 덮고 있습니다.
(잉크가 뚝, 뚝 떨어지는 소리)
...이제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힘겹습니다. 눈꺼풀이 종이처럼 빳빳하게 굳어버렸거든요. 하지만 아직 전해야 할 기록이 남았습니다. 내 몸이 완전히 한 장의 호외(號外)가 되어 흩어지기 전에... 다음 제보를... 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