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4] 무덤까지 플라토닉
Billie Holiday, Lester Young - Fine and Mellow
정수는 고추가 너무 작아 우울증에 걸렸다. 매일 아침 고추가 빳빳하게 서 잠재울 시간이 필요해 난감하다는 친구들을 질투하다 혐오하기 시작했다. 정수는 고추가 작아서 첫사랑 혜미를 가슴 아프게 떠나보냈다. 정수는 혜미에게 고백하기 위하여 한강이 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의 30만 원 코스 요리까지 예약했다. 혜미의 손을 잡고 일주일 동안 준비한 고백 멘트를 날리려는 순간 위기가 찾아왔다. 혜미의 상기된 얼굴을 보는 순간 혜미와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뽀뽀를 하고 키스를 하고 침대에 눕는 시뮬레이션까지 초고속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하얀 침대에 누운 상기된 혜미는 정수의 속옷 속으로 손을 수욱 넣는다. "음... 이게 다야?" 정수의 마음과 싱크가 맞지 않는 고추를 보고 혜미는 실망한다. 혜미는 그렇게 영영 떠났습니다. 끝. 정수는 30만 원을 내고 야경과 스테이크를 곁들인 수치심을 얻었다.
정수는 서른두 살이 된 지금까지도 연애를 하지 못했다. 쉿, 이건 우리끼리만의 비밀이고 그는 공식적으로 '무성애자라 연애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에이섹슈얼 인권운동이 활발한 요즘 시류에 얹혀가기 아주 적격이다. 정수의 컴플렉스는 시대의 운에 맞닿은 것이다. 그 컴플렉스란 것이 조금 힙해 보이기도 한다. "안녕, 내 이름은 정수야. 나는 에이섹슈얼이지." 왠지 에이섹슈얼 정수는 핸드드립으로 내린 원두커피를 하얗고 두꺼운 머그잔에 따라 마시며 불편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에 사는 정수는 30년 된 28평 아파트 방구석에 처박혀 비뇨기과 검색을 하고 있다. 고추 확대 수술, 고추 필러 시술, 해바라기 수술... 여자들이 압구정에서 얼굴에 희한한 짓을 하는 동안 남자들은 더한 짓을 고추에다 하고 있던 것이다. 영수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서울시 영등포구에 있는 '짱짱 남성의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예약을 잡았다.
'짱짱 남성의원'의 상담실장은 정수에게 수많은 고추들을 보여주었다. 이 손님의 고추는 손톱만 했는데 확대 수술 후 이만큼 커졌답니다. 필러 시술도 확대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6개월마다 방문하셔서 계속 맞아주셔야 해요. 필러의 부작용은 소불알처럼 축 처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왕 하실 거 확대 수술로 한 번에 싹 하시죠? 타인의 고추 사진을 견딜 수 없었던 정수는 상담실장의 눈을 끝까지 마주치지 못한 채 확대 수술 날짜를 잡고 380만 원을 일시불로 지불했다.
한 달 후 정수는 한껏 커진 고추를 바라보며 소개팅 어플을 뒤적였다. 이제 정수는 에이섹슈얼에서 짱짱섹슈얼로 거듭났다. 흠, 얘는 눈이 너무 작군. 얘는 너무 남자 같아. 얘는 혜미랑 좀 닮았네. 혜미한테 다시 연락이나 해볼까...?
세 시 뉴스입니다. '짱짱 남성의원'이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람의 피부라 속이고 돼지 피부를 이용해 성기 확대 수술을 진행한 엽기적인 행각이 밝혀졌습니다. 의사 이 모 씨는 상담실장 정 모 씨와 범죄 공모를 하여 3년 동안 손님들에게 약 3400건의 가짜 수술을 진행한 것이라 경찰은 발표했습니다. 현재 이 모 씨와 정 모 씨는 도주 중이며 경찰은 두 범인의 검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정수는 자신의 고추를 바라보며 고추 피부를 기증해주었을 익명의 돼지를 떠올렸다. 정수는 평생 플라토닉 관계만을 고집했고 버진(virgin)으로 사망했다.
Oct. 14th of 2021
레스터 영과 빌리 홀리데이는 죽음까지 함께한 영혼의 재즈 파트너이다. 레스터는 우아한 빌리를 'Lady Day'라는 애칭으로, 빌리는 자신을 빛나게 해주는 레스터를 'Pres' (President)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레스터와 빌리는 영혼을 나눈 만큼 약물도 나누었고, 이로 인해 레스터는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레스터의 장례식에서 빌리는 추모곡을 부르고 싶어 했으나 레스터의 아내는 완강히 거절했다. 화가 난 빌리는 자신도 따라 죽을 것이라 선언하고 실제로 4개월 후 사망했다. 언론은 레스터와 빌리의 관계를 계속 추궁했으나 둘은 끝까지 '플라토닉 관계'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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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 Holiday, Lester Young - Easy Living
Billie Holiday - Strange Fruit
*Strange Fruit은 인종차별로 인해 사망한 흑인이 나무에 매달려있는 모습을 열매에 비유함으로써 인종차별에 저항하기 위한 노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