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형이 알려주는 연애꿀팁 (장기연애 주의)
몇 달 전, 친한 언니가 이거 한번 해보라며 테스트 링크를 하나 보내줬다. ‘성인애착유형테스트’ 였다.
MBTI가 일반적인 성향을 말해준다면, 이건 관계 안에서의 성향을 분석해 준다. 결과는 크게 1) 안정형, 2) 불안형, 3) 회피형 세 가지로 나뉘는데, 나는 안정형(자기 긍정&타인 긍정)이 나왔다. 알고 보니 애착유형이 형성되는 데에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관계가 큰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다정한 엄마와 든든한 아빠 사이에서 안전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걸 생각하면, 바로 이해가 되는 테스트 결과였다.
내가 생각하는 안정형이라서 가장 좋은 점은, 관계 안에서 어떤 감정이던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으면 좋다, 속상할 때면 속상하다, 실망했을 땐 실망스럽다, 이처럼 내 마음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에 불편함이 없다. 지난 연애를 돌이켜봐도 늘 그랬다. 그리고 대부분은 내 이런 면을 좋아해 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내가 편안하고 믿음이 간다고 했다. 이 정도 투명함이면 혼자 삼키거나 숨기는 게 없을 거고, 그래서 더욱더 신뢰가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Self Q&A 9화에서는, 내가 관계 안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식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지난 8화에서 '삶을 바라보는 렌즈' 라는 표현을 썼는데, 나는 사람을 볼 때도 같은 렌즈를 낀다.
나의 좋은 점을 비틀어서 보면 단점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가진 단점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장점이다. 세상에 좋기만 한 일도, 혹은 나쁘기만 한 일도 없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즉,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했다.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상대방의 좋은 점을 먼저 보려는 마음이 강했다. (이건 아마 내가 나를 바라보려고 하는 방식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모습은 늘 비슷하다. 이 같은 긍정렌즈를 디폴트로 끼고, 아래 세 가지를 관계 안에서 꾸준히 보여준다.
1. 나만의 언어로 인정하기
내가 인정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감사와 구체적인 칭찬이다. 누군가의 좋은 면을 먼저 보는 게 익숙해서 그런지, 유독 연인에게는 이게 더 쉬웠다. 이렇게 상대를 인정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나를 보고 “너는 그렇게 하면 남자친구가 기고만장해질까 봐 걱정은 안 돼?”라고 묻는 친구도 있었지만, 내 경험으로 보면 그 반대였다. 상대에게 고마움을 표현할수록 감사할 일은 더 많이 생겼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내서 구체적인 언어로 말해줄수록 그는 나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주었다.
인정의 중요성을 느꼈던 계기가 있다. 오랜 기간을 만났던 전 연인과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 우리는 하루 한 가지 질문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공유하는 다이어리앱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온 질문이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큰 장점은?” 이었다.
장점이 한두 개가 아닌 사람이라, 그 많은 장점 중에 본인은 어떤 걸 골라서 쓸 지 너무 궁금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내 답변을 빠르게 작성하고 제출 버튼을 클릭했다. (내 대답을 쓰고 내야지만 상대방 답변도 볼 수 있었다.)
[음…] 으로 시작하는 답변을 본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찍혔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답변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뉘앙스는 분명 '내 장점을 잘 모르겠다' 였기 때문이다.
‘좋은 점이 이렇게 많으면서 어떻게 그걸 모르지?’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었다면, 그 답변을 곱씹을수록 점점 속이 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념일에도 잘 안 쓰는 장문의 카톡을 적어 내려갔다. 그동안 봐온 그의 모든 장점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었다. 메세지를 읽으면서 본인이 가진 좋은 점들을 가능한 한 선명하게 느끼길 바랐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상대의 장점을 느끼면 느끼는 대로 내 방식으로 표현하게 됐다. 그 사람의 본질을 알아보고 그것들을 나만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첫 번째 방식이다.
2. 진심으로 경청하기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상대방의 말을 듣는 자세다. 내가 생각하는 경청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상대 이야기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마음이다. 그냥 듣는 건 쉽다. 하지만 진심으로 궁금한 마음으로 듣는 건,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이 마음으로 대화를 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나는 질문이 많아진다. 어떤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했을지, 뭐 때문에 그렇게 느꼈는지, 그럼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이런 것들이 전부 궁금하다. 이렇게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던진 질문들로 말을 이어 나가면, 대화의 질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소통은 양방향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날것의 물음표들을 그대로 전달받는 상대방은 '이 사람은 내 얘기를 그냥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진심으로 경청하고 질문하며 ‘나랑 있는 동안은 네가 주인공이야.’ 라는 느낌을 주는 것.
그렇게 상대방을 특별하게 대해주면, 상대 역시 같은 방식으로 나를 대해주었다.
3.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
연인관계에서 내가 상대에게 가장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해 보면,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나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내가 아닌 걸 요구하지 않는 것. 물론 나 역시도 상대방을 그렇게 대하려고 한다.
한 번은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그가 아닌 모습을 원했던 적이 있었다. 무뚝뚝한 사람에게는 가장 어려운 과제나 마찬가지였을 '다정함'이다. 하지만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게 의미가 없는 것처럼,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말한 지 3시간 만에, 다정함 주문을 취소했다.
그래서 계속 무뚝뚝했냐고? 그날 이후, 이런 모습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주문 취소 이후에 나온 자발적인 다정함은 내게 더 크게 다가왔다. 이렇게 내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무엇보다도 힘이 세다.
여기까지만 보면 나라는 사람은 '칭찬하고, 고마워하고, 잘 들어주고, 불필요한 요구도 하지 않는' 완벽한 파트너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환상을 깼다면 미안하지만, 전혀 아니다. 나는 좋을 때 좋다고 표현하는 만큼, 반대의 상황에서도 똑같이 한다. 내 기준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라면, 정확한 말로 내 의사를 상대에게 전한다.
나는 솔직한 소통이 건강한 관계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3번의 키워드인 '존중'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갈등 상황에서 상대에게 화는 낼 수 있어도 비난은 하지 않는다. 화를 내는 것과 비난은 다르다. 화를 내는 게 정당한 감정 표현이라면, 비난은 ‘내가 너 때문에 상처받았으니까 너도 상처받아.’ 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 폭발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상황이 더 좋아질 리가 없다.
연인관계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게 갈등이니, 갈등 자체는 문제가 없다. 진짜 문제는 이런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다. (두 사람이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상황에서)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솔직한 의사소통만 된다면, 이 세상의 수많은 갈등이 너무나도 쉽게 풀릴 것이다. 나는 대화를 통해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것 같았던 일도 해결해 봤고, 반대로 대화가 되지 않아서 아직 사랑이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관계를 끝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 알고 있다.
오늘 글의 시작과 끝이 '솔직한 표현'으로 반복되는 걸 보면,
결국 관계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었다.
© Disney / Tangled (2010)
오늘의 질문
Q1.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나는 상대방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주고 싶나요?
Q2.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Q3. 관계 안에서 나의 강점/약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