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이라고 앙증맞게 부르기엔 월세가 비싸다. 국어사전에는 아직 없는 단어지만 현대인들끼리는의미가 통하는 '자취집'이라고 해야겠다.
'자취'는 '자기 밥을 스스로 지어먹으면서 삶'이란 뜻으로 '본가에서 독립해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생활 전반'을 의미한다.밥을 해 먹으며 사는 것이 자취라면 대학교 때의 기숙사 라이프는 빼고 이곳이 작은애의 첫 자취집이다.
우리 가족은 4인 가구였는데 이제 우리 부부끼리의 2인 가구와 두 딸들 각자의 1인 가구로 분리됐다.
집을 스캔한다. 현관에 입장해서 신발을 벗고 올라오면 바로 왼쪽에 욕실이 있다. 두 걸음만 걸어 들어오면 방의 전경이 다 보인다.
왼편으로 일자 형의 작은 싱크대와 그 앞에 직사각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있는 공간까지를 '주방'이라 하겠다. 테이블을 교집합 부분으로 포함한 가상의 경계선을 시작해 앞쪽의 붙박이장 하나를 지나 오른편의 큰 창까지 남은 공간 전체가 '거실 겸 방'이다. 이것이 전용면적 9평의 전부다.
테이블에서 요리 준비를 하거나 밥을 먹을 때 거기는 주방이고 노트북을 놓고 일을 하면 그때는 거실이다.
9평 집의 모든 것이 다용도, 다목적이다.
나는 결혼하면서 처음 본가를 떠났는데 나의 첫 집이자 신혼집은 지방 대도시의 24평 아파트였다.
방 세 개와 주방, 거실, 욕실로 명확한 용도 구분이 있었다.
요즘 인테리어에는 거실 가운데나 발코니 앞쪽으로 메인 식탁을 놓는 배치도 흔하지만 그때는 천장에 매달린 식탁등 아래가 당연히 식탁 자리였다.
그 집에서 두 딸을 낳고 작은딸이 돌이 될 무렵에 지금 사는 도시로 이사를 했다. 첫 아파트나 두 번째 아파트는 남편의 직장 인사 발령에 따른 선택이었다.
두 번째 집은 1기 신도시의 15평 아파트였다. 그때는 같은 연식의 지방 도시 아파트 24평 매매가보다 1기 신도시 15평 전세가가 천만 원쯤 비쌌다. (문득 궁금해서 시세를 찾아보니 지금은 1억이 비싸다)
이삿짐을 나르던 아저씨가 '이 살림을 다 어디에 놓느냐'고 물어서 일단 작은방에 다 쌓아만 두시라고 말했었다.
2년 전세를 끝내고 20평 아파트를 샀고, 다시 1년 반 후에 25평 아파트를 매매했다.
나는 신비롭게 눈부셨던 어느 아침을 기억한다. 안방 겸 거실이 있던 15평에서 2년을 살다가 거실과 안방이 나뉜 20평으로 옮겨와서 첫밤을 자고 일어난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나왔는데졸린 눈앞에 널찍한 공간이 펼쳐지면서 상쾌하게 불어오는 공기에 파자마 자락이 펄럭했다.
아니 20평 아파트 거실이 뭐 얼마나 넓었겠는가. 그러나 그 순간의 나에겐 광활하게 느껴졌다.
15평 집 전에 살던 신혼집은 훨씬 넓었는데도 그날의 느낌이 생생히 남은 건 아마 신혼집은 시부모님이 사 주신 집이었고 20평 집은 내가 직접 보고 고른 집이어서 애착이 더했던 게 아닌가 싶다.
지난 이틀 내내 우리 부부는 작은애의 자취집에서 전 세입자의 담배 냄새를 빼느라 무척 고생했지만 아직 미션 클리어는 아니다.
담배 냄새로 찌든 집을 경험했다는 후배가 거슬리는 냄새가 어찌어찌 반년은 가더라고 했다. 그 말에 깜짝 놀라서남편은 거의 '집을 에탄올 희석액에 담갔다 꺼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씻어냈다.나는 인터넷에서 효험을 봤다는 간증이 달린 제품은전부 사다가 풀어놨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는 방법은 다 해 봐서 결국 무엇 덕에 냄새가 많이 사라진 건지 알 수가 없다.
(혹은 그 모든 것들의 시너지인지도!)
딸은 조금 이따 신입사원 교육에서 돌아오면 제 자취집을 처음 와 본다. 주소를 알려줬으니 길안내 어플을 켜고 찾아올 것이다. 회사 앞에서 해산하면 걸어오며 시간을 잴지도 모른다.
진짜 걸어서 5분이면 오네! 하고 좋아하겠지.
하지만 여기서 잘 수는 없다. 오늘은 천장 도배를 새로 해서 축축한 도배풀 냄새에다 아직 남은 담배 냄새가 섞여 마치 마녀의 레시피로 만든 수프에서나 맡을 법한 묘한 냄새가 난다.
그래도 내일 밤부턴 잘 수 있겠지. 예상치도 못 한 담배 냄새 이슈로 입주가 늦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작은애의 첫 자취집은 사회 초년생의 주말 아침을 품어주는 꽃다운 공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