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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y Mar 07. 2024

제발, 한 숟갈만 먹어줘.

이유식 전쟁 

아기를 키우면서 쉽지 않다고 느낀 것의 양대산맥이 있다면 1. 재우는 일과 2. 먹이는 일이었어요. 

누군가를 먹이는 일이 이렇게 고달프다는 것을 아기를 키우면서 처음 알았네요.

막 출산을 하고서는 젖이 돌지 않아 모유를 먹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제 모유수유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두둥! 이유식을 먹일 때가 찾아왔습니다. 




만 6개월이 되어갈 때 이유식을 시작한 것 같아요. 

이유식은 도대체 어찌 만드는 것일까?? 인터넷도 검색해 보고, 이유식 책도 사봅니다. 

전 요리에 소질이 없는데 이유식 만드는 것도 그다지 반갑지 않았어요. 그래도 엄마니깐 이것저것 준비해 봅니다. 


눈금이 그려진 유리 저장 용기 /  생전 써보지 않았던 요리 저울 / 이유식 만들 때 사용 할 아기 냄비,  

아기 만을 위한 냄비 주걱 / 입고, 벗고, 세척이 용이한 실리콘 턱받이 / 식탁에 고정되는 실리콘 식판, 그리고 실리콘 수저... 등등등 

 

뭐든 처음은 새롭잖아요. 새로운 것 사는 것까지, 딱 거기까지 재밌었습니다. 




다들 그렇듯 쌀미음으로 시작했어요. 쌀미음도요. 집에 있는 쌀을 사용할 수도 있고, 직접 좋은 쌀을 방앗간에 서 갈아줄 수도 있고, 쌀가루를 쓸 수 있고 다양하데요. 

저는 집에 있는 쌀로 요리를 시작합니다. 쌀의 무게를 재고, 깨끗이 씻어서, 아기 냄비에 물과 함께 끊입니다. 죽처럼 끊이다가 믹서에 갈아줘요. 그리고 아기가 먹기 좋게 체망에 여러 번 걸러 쌀미음을 만듭니다.  

바운서에 앉아서 엄마를 쳐다보는 만 6개월 아가에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숟갈 먹입니다. '띠용~' 눈이 동그래집니다. 느낌과 맛이 이상한지 자꾸 혀로 뱉어내요. 입 아래로는 질질 흘러요. "왜~~? 맛이 없어?" 웃음을 띠며 물어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얼마나 어색하고 맛없었겠어요. 그저 엄마도 아기도 처음 수저로 음식을 먹는 그 순간이 신기합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어요. 이유식 만들어 먹는 시간은 늘 전쟁이 됩니다. 

항상 질 테지만 거창하게 준비해야 하는 전쟁. 

이유식 만드는 거 은근 손이 많이 가잖아요. 재료 준비해야 하지, 씻어야 하지, 다져야 하지, 으깨야하지, 

턱받이 입히고, 옷에 묻을까 봐 우비 같은 것도 입혀 앉히면 아기는 답답한지 "이잉~~~" 징징 대기 시작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 별로 없고, 뱉는 게 더 많습니다. 이유식을 손으로 탁 쳐버려서 쏟아지기도 해요. 그렇게 순식간에 엉망이 됩니다. 


점점 쌀에서 야채로, 고기로 내용물도 많아지고 형태도 단단해집니다. 그만큼 전쟁은 더 치열해져요. 음식을 던지고, 으깨고, 난리도 아닙니다. 그냥 촉감 놀이 몇 번 하고 끝나는 것 같았어요. 사방이 지저분해져요. 한동안은 식사시간이 다가오는 게 무섭더라고요. 스트레스였어요. 

어떤 날은 (그러면 안 되는데..) 아기 머리를 콩! 하고 때려주기도 했어요. "좀. 먹어라. 좀. 제발 한 숟갈만 더 먹어줘."  아기가 잘 안 먹는 게 왜 이렇게 김 빠지는 일인지요. '내가 한 게 맛이 없나....' 때론 눈물도 났습니다. (맛이 없기도 했을 거예요.ㅋ) 


먹는 건 눈곱만큼 같은데 싱크대에 설거지는 쌓여 있습니다. 이유식을 몇 번 사기도 했는데, 샀는데 안 먹는 건 더 아까우데요.  엄마는 계속 주방에서 낑낑댑니다. 준비하는 건 한참, 먹는 건 눈곱, 치우는 건 산더미. 




오물오물 고 조그만 입에 들어가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아기엄마를 만나면 항상 물어봐요. 

"그 아기 밥 잘 먹어요? 우리 아기는 너무 안 먹어요." 인생 최대의 고민... 아기 밥먹이기.


먹어야 크고 먹어야 튼튼해질 텐데 쉽지가 않았어요. 

이후 좀 커서야 채소도 다양하게 먹고, 고기도 먹고 합니다. 여전히 안 먹는 건 안 먹기도 하고요. 그런데 먹는 것도 잠자는 것만큼이나 엄마인 저를 닮았네요. "한 번만 더 먹어." 하고 엄마가 어린 나를 쫓아다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저 소문난 편식쟁이였거든요. 생소한 야채는 손도 안댔어요. 초등학생 때까지... 

그에 비해 우리 아기 잘 먹어주는 거였더라고요. 


그때는 먹지 않는 아기한테 왜 이렇게 짜증을 내고 스트레스를 주었는지 그리고 나 스스로 타박하고 속상해했는지... 오늘 좀 안 먹어도 내일은 잘 먹을 텐데... 여유 있게 기다려 주는 것. 이유식에도 필요했었네요. 

"아기야. 한 숟갈만 먹어줘도 고마워!, 내일은 조금 더 먹자" 

유아식에 임하는 자세. '오늘 식사도 재미나게 즐기자!'라는 마음 이게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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