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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t M Feb 05. 2022

운명의 지도

점집엘 갔다.

한 10년 전쯤이었나보다.

친구는 그를 '도사님'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용하다는 뜻이었다.

재미로 따라간 것이었는데 도사님의 말을 들으며 끄덕끄덕하는 친구를 보며

일말의 호기심이 일었다.

신년 운세라든지 사주팔자라고 하는 것들은 지난 세월들의 통계치이므로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만 아는 특정 사건들에 대해 전해 들을 때에는 참 신기한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도사님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금 하나로 인생의 전반적인 굴곡과 중요한 요소들을 집어 말하는 것이

마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같았다.

그러니까, 저 길로 가면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과속방지턱을 여러 개 넘어 오래 걸릴 것인데

이 길로 가면 얼마치의 돈을 내고 고속도로를 지나 빨리 갈 수 있다는 그런 원리였다.

게다가 딱히 걱정도 없던 그 시기에 도사님은

불필요한 걱정거리도 하나 안겨주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 그 점집을 다시 찾았다.

역시나 도사님을 무한 신뢰하던 친구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보지 말아야 할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도사님은 점집 주변에서 주차 문제로 이웃 주민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급기야는 욕설이 오고 갔고, 그때는 도사님이 도사가 아닌

그저 그런 욕쟁이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잘못 안내했고,

크게 실망한 운전자가 이제 최신 기기로 바꿔야겠다며 투덜대는

그런 비슷한 상황이랄까.


만약 콜럼버스에게 그의 목적지를 정확히 안내해 줄 지도가 있었다면

그는 신대륙을 발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삶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만약 우리 손바닥 위에 그려진 몇 개의 선에 의지한 채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이미 정해진 운명 안에서 끊임없이 방황만 한채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개척자의 삶이 아닌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때로는 지도 위의 길에서 벗어나

나의 옳은 신념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분명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위에서

뜻밖의 지름길을 발견할 수도,

의외의 행운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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