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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긍정 Feb 09. 2022

“스테이시! 방법 말고 문제 갖고 와!!!”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두 번 일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방법.txt

이 글의 BGM으로는 지코의 Artist를 권합니다.

남이 재단할 수 없어,
내 인생은 내가 디자인해
From now on 모든 것을 백지로 되돌려 놓고
생각 말고 저질러, 붓은 너가 쥐고 있어

- 지코의 Artist 가사 中



Prologue

이 글은 내가 첫 직장에서 인턴으로 입사했을 때 시작해, 퇴사를 하고서야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그만큼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나의 커뮤니케이션 태도를 바꾸기 위해 나름 오랜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취준생일 때 배운 이론의 이상과, 입사 후 겪는 실무인 현실에서의 가장 큰 차이는 사실 '디자이너와의 소통'이다. 보통 비전공자나 무관한 일을 하던 사람이 서비스 기획자나 PM / PO를 준비할 땐 상대적으로 낯선 개발자와의 소통에 걱정이 더 앞서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경험상 디자이너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어렵다. 왜냐하면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개발은 보통 구현이 된다/안된다, 해당 기간 안에 가능하다/가능하지 않다, 스테이징 환경에서 오류가 났다/안 났다 이렇게 대부분 Yes or No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반면, 디자인은 각자 주관적인 경험과 시선으로 시안을 바라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조율이 더 어렵다. 특히 비즈니스 오너, 영업 매니저, CX 등 PO보다 좀 더 고객과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직무의 분들과 미팅을 거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줏대 없이 디자이너분께 “심플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에, 밝은 블랙이 어떨까요?”라는 개소리를 시전 하게 된다.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나는 UX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UX Writer, UX 리서처 등 다양한 시선에서 기획을 겸하는 디자이너 분들과 협업을 하게 되었다. 첫 직장에서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인턴 시절 이불킥을 부르는 나의 무지했던 의식의 흐름을 담았다. 사실 이 글은 그동안 부족했던 나와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 분들께 건네는 반성문이다.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스테이시, 너의 눈을 빌려줘!”

첫 직장에서 인턴으로 입사 후, 정식으로 초대된 첫 미팅명이 <너눈빌>이었다.

첫 미팅 초대라는 설렘을 뒤로한 채, 내가 모르는 IT 용어를 한글 발음으로 풀어쓴 줄 알고 있지도 않은 nunoonvill을 검색해가며 (ㅠㅋㅋㅋ) 애꿎은 구캘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게 대체 무슨 미팅이람? 옆자리 디자이너에게 물어보니 “너의 눈을 빌려줘”의 줄임말이란다. 그리곤 생각했다.


나의 눈을 빌려달라고…? (섬뜩)


<너눈빌>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라떼의 뉴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내 UT를 일컫는 은어다.
뽀시래기 인턴이었던 나는 <클래스 문방구> 프로모션 이벤트 페이지의 유저 테스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나만의 야매 UX Writing에 빠져 있었어서, 고객의 입장에서 해당 콘텐츠의 흐름과 내용이 이해가 되는지 안되는지, 관심이 가는지 왜 안 가는지 등 그분들께 일말의 인사이트를 주기보다는 “요즘엔 이런 게 유행인데, CTA명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하며 어그로 끌기 아이디어를 주기에만 바빴다.


오랜만에 보니 정말 풋풋하고 추억 돋는 클방구 일러스트,,


현시점으로 돌아와,
새로 이직한 지금의 회사에서 뉴비 인턴 분들께 사내 UT를 진행하며 나는 그날의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해당 CTA 문구에는 분명 담당 디자이너, 마케터 분의 숨은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것도, 모두 다 계산되었을 것이다. 작은 문구 하나라도 피드백을 주고받을 땐, 절대 “그냥”은 안된다. 그냥 바꿀 거면 그냥 안 바꾸는 게 맞지, 애초에 설득력이 없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런 실수를 많이 했었다.

“첫 진입 화면에서 다른 콘텐츠가 눈에 너무 안 보여서 전환율이 낮은 것 같은데, 일단 이 배너 사이즈 좀 줄일까요?”


‘다른 콘텐츠가 눈에 너무 안 보인다’라는 말은 언뜻 보기엔 문제 같아 보이지만 온전히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다.

‘배너 사이즈를 줄이자’도 언뜻 보기엔 솔루션 같지만, 그 배너의 사이즈가 전환율이 낮은 원인이라고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었다.


프로덕트 매니저의 역할은 
UI의 컬러나 사이즈를 바꾸자며 디자인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해당 화면에서 왜 고객이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목표한 만큼 왜 전환율이 나오지 않는지 진짜 문제를 찾고 이를 해결할 수 있을 여러 가설을 제시하고 검증하는 것이다. 이걸 깨닫기까지 나는 꽤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었다.





 “패스트캠퍼스처럼 이런 건 어때요?”

'그냥, 조금만, 일단 이런 애매한 피드백을 하지 말아야지!'라는 1단계를 거친 후, 나는 나름 디자이너분께 도움을 주겠다고 여러 레퍼런스를 찾아 들이미는 2단계로 발전(?)했다. 사실 타사 레퍼런스를 갖고 미팅을 하게 되면, 시각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에 서로 공통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각자 시안을 바라보는 시선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예시로 한 영업 매니저분께서 “패스트캠퍼스처럼 이런 건 어때요? 명확하고 좋은데!” 하며 해당 시안을 캡쳐해 보내주셨다. 단순하게 ‘명확하고 좋다’라는 의견에 공감한 나는 바로 디자이너분께 이 내용을 부엉이처럼 고대로 전달했다. 하지만 디자이너분의 반응은 “이 시안의 어디에서 어떤 명확함을 느꼈다는 걸까요?”였다.


출처: https://fastcampus.co.kr/b2b_main


그리고 그때 놀랍게도 나와 매니저님이 생각한 ‘명확’의 포인트가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매니저님은 각 박스에 해당하는 정보가 넘버로 나열되어 '정보 전달이 명확하다'는 뜻이었고,

나는 각 박스에 해당하는 핵심 장점이 배지로 붙어있어 '한눈에 비교하기가 명확하다'는 뜻이었다.


디자이너 분께 레퍼런스를 갖고  때는
어디가 어떤지,  그렇게 생각했는지 까지도 유관부서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봤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내가 생각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정말 부끄러워서 한동안 ‘나는 프로덕트 매니저가 아니라 프로덕트 부엉이야라며 스스로   자책의 나날을 보냈었다.





 “그래서 어디가 다른 거죠?”

마지막은 대망의 어디가 다른 거죠 단계다.

사실 이건 나만 그런 걸 수도 있는데, 피그마의 to-be 시안과 코멘트에만 집중하다 보면 전체적인 대화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회의실이 아닌 함께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디자이너 분이 ‘이런 건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다~’라는 의견을 주어도 흘려 넘긴 적이 많았다. 내가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는 PM이라면 함께 고민해줄 수 있었을 텐데 당시의 나는 그러질 못했다. 그럼 나중에 은근한 디테일을 놓치게 된다. to-be 시안에만 집중하면 디자인 QA때, ‘원래 스펙이 뭐였더라?, 아니 애초에 이런 걸 논의했었던가?’ 하며 슬랙과 피그마를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길어지게 된다.



여기서 퀴즈. 다음 중 두 시안의 다른 점은?! (댓글로 달아주세요:')

당시 저 홍현희 님 빨대퀸 콜라보 포스터가 사내 곳곳에 붙어있었는데, 한 마케터분이 해당 디자이너분께서 A와 B 둘 중 어떤 걸 픽스하면 좋을지 끝까지 고민하셔서 결국 둘 다 쓰자고 했다는 비하인드를 말해주었다. 그리곤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그래서 어디가 다른 거지 ^_ㅠ’


사실 고객 입장에서는 눈치채지 못하는 디테일일 수 있다.

하지만 확실히 강조를 한 버전과 아닌 버전의 시선이 머무르는 지점은 다르다. 그러면 무의식 중으로 고객이 받아들이는, 기억하는 정보는 어디까지일까? 이 모든 걸 다 고민하고 고치고, 고민하고 고치는 디자이너야 말로 가장 고객 중심적 사고를 실현하는 직무가 아닐까?





Epilogue

첫 직장에서 나는 여러 프로덕트, 브랜드 디자이너 분들과 협업을 했다.

그중 가장 긴밀하게 일했던, 내가 가장 애정했던 프로덕트 디자이너 분의 명대사가 있다.


스테씨! 방법 말고 문제 갖고 와!!!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프로덕트 매니저의 역할과 차이는 사실 이 한 문장 안에 있는 게 아닐까?

보고싶은 그녀의 진리를 되새기며,

기나긴 반성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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