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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Oct 17. 2021

길심씨의 일상 투혼

아침에 일어났더니 집이 텅 비었다. 텃밭에서 시금치를 뽑고, 다듬고, 씻고, 삶아서 나물을 만들었다. 바지락국도 끓였다. 그래도 성수씨, 길심씨가 들어오지 않는다. 잠시 후 성수씨의 자전거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는

"아야, 느그 엄마는 이따 온다고 둘이 밥 먹으라 안하냐. 속이 없제. 내 말을 안 들어. 니가 얼른 자전거 타고 논에 가서 데꼬 온나."

자전거를 타고 쌔앵 등가래 논으로 갔다. 자전거길에 콤바인이 다녀간 빈 논에 줄지어 누워있는 짚에서  불어오는 가을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내 코를 간질인다. 아침 공기는 쏴아하고 월출산 위에 벌써 떠오른 아침 햇살은 눈이 부시다. 길심씨는 논 귀퉁이에 앉아 벼 이삭을 주어 손으로 검은 비닐종이에 알곡을 훑고 있다. 

"엄마, 얼른 가세. 아버지가 엄마 안 오면 밥 안 먹는다고 하대."

했더니 순순히 

"그래 가자!" 한다.

하하, 우리 길심씨가 딸이 모시러 오길 기다리고 있었나? 아니 아버지의 기다림에 마음이 움직였나? 


셋이 먹는 마지막 아침식사다. 점심을 먹고는 서울에 간다. 길심씨가 식사 중에 

"아따 인자 딸내미 가버리면 으짜쓰까잉. 딸이 밥해준께 좋았는디."

하니 아버지는 

"느그 엄마는 느그들한테는 왜 그렇게 잘 한다냐. 봐라! 돈 모태서 느그들 줄라고 죽을 둥 살 둥 밥도 안 먹고 일할라고 안하냐? 맨 느그들 딸들 밖에 몰라. 어릴 때부터 느그들한테 욕 한자리 안 하고 키웠지."

한다. 맞다. 우리 길심씨는 남편, 딸들 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이들을 위해서라면 몸이 바스러져도 아끼지 않는다. 나도 엄마지만 나는 길심씨처럼 절대로 하지 못한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길심씨는 논에서 주운 벼 이삭 알곡을 바구니로 치고 까불어서 햇볕에 말리며

"이놈 찧었으면 한 이틀은 밥 먹것다" 한다.

한시도 쉬지 않고 밭에서, 논에서, 마당에서, 수돗가에서 고물고물 계속 몸을 움직인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바로 그 힘은 자식을 위한 마음이다. 길심씨와 같이 지낼수록 그녀의 마력에 빠진다. 아낄 건 엄청 아끼지만 쓸 때는 통 크게 쓰고 걱정은 미리 당겨 하지 않는다. 하지만 총기가 좋아서 어느 것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모든 걸 기억해 수다삼매경에 자주 빠지고 빠지면 빨리 나오지 못한다.


벼 알곡을 볕에 널어 놓고는 길심씨는 또 어제 담근 파김치, 무김치를 싸고 생강청, 대추청, 된장, 냉동생선, 참기름, 볶은 참깨 등을 꺼내 놓는다. 이를 어이할꼬. 길심씨의 끝없는 자식 사랑을... 보름 여의 시골살이를 끝내고 돌아서는 길, 그 길엔  또 마음이 아리다. 그래도 여름보다는 덜 아리다. 성수씨의 운동 루틴, 길심씨의 마을회관 나들이 루틴, 하루에 두 번  두 분의 화투 루틴 등 멋진 일상을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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