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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Oct 17. 2021

나랑 나이가 같은 도깨비장

"아이고, 오늘은 구림장날이니께 장도 보고 물리치료하러 갈란다. 으째 엉바지(엉덩이)가 아프다."

길심씨가 아침밥을 얼른 먹자고 서두르더니 병원에 가자고 한다. 어머니 단골 물리치료 병원은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군서면 소재지인 구림에 있다. 물리치료가 끝나고 장을 보려는 것이다. 구림 오일장은 2일, 7일에 열린다.

병원비 1,700원을 내면 2시간가량의 팔, 다리, 어깨, 허리 전신 물리치료를 해준단다. 길심씨 말을 빌리자면 일명 '다림질'이다.

"거그가 다림질을 자알 한당께. 그랑께 자주 가제."

그 병원, 군서의원에서 나도 코로나 예방백신 2차 접종을 했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2주 시골살이를 계획하면서 백신 접종장소를 서울에서 이곳으로 변경한 것이다. 원장님께서 친절하게 예후에 대해 설명을 너무 잘해주셔서 살짝 겁을 먹었었다. 다행히 별 이상 없이 잘 지나갔다.

아침을 먹자마자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치료가 끝나길 기다렸다. 두 시간가량이 지나고 전화 호출을 받고 다시 구림 장터로 갔다. 길심씨는 장터에 앉아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구림장에서는 살게 없다는 길심씨 말처럼 장이 썰렁하다. 대형마트가 생기고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  차량 증가로 구림 오일장은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상점은 거의 문을 닫았고 몇몇 노점상만 나와 있다. 

구림장에서 어머니는 조기를 사고, 바지락을 사고 양동이에 잘 길러진 숙주나물(숙주나물)도 샀다. 장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살 거리가 거의 없다. 그래도 장날이라 성수 씨도 따라 나왔다가는 차 옆에서 맴맴 돌다가 다시 차에 올랐다. 차에 오르자마자 길심씨는

"봤지야잉. 구림장은 사람이 없당께. 이랑께 도깨비장이라 하제. 이제는 그릇장시도 안 나오고 닭장시도 안 나오고 다 없어져부렀어야."

한다. 시골에서는 사람이 없어서 도깨비 장이라 부른다니... 도시에서의 도깨비장과는 그 의미가 다른 듯하다.


길심씨는 또 구림 오일장의 유래에 대해 말한다.

"너 낳던 해에 구림장이 생겼어야. 장이 생겼을 때 옷 사다 입히면 좋다고 해서 그때 니 옷도 사다 입혔다잉. 부모는 자식한테 좋다고 하믄 뭐든지 다 하고 싶응께."

구림장이 내 나이와 같다니 갑자기 애정이 솟아난다. 반세기 하고도 15년이 지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우리 고장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깃든 장소였을 거라 생각하니 시골 오일장에 대해 다시금 여러 생각이 지나간다. 어린 시절 장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먹을 것도 사 오고 옷도 사오고 장날은 늘 명절 같았다. 길심씨는 예전엔 영암읍 오일장, 독천장을 보기도 했지만 구림장을 가장 많이 다녔었다. 이제는 달력을 보며 영암장, 독천장을 챙긴다.  


시골사람들은 오일을 기다려 물건을 사고, 여분의 생산물을 내다 팔고, 교환하고 어쩌다는 자연스레 친정어머니를, 언니를 오일장에서 만났다. 오일장은 물건의 거래. 교환뿐만 아니라 친인척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일장의 상점 문이 거의 닫혀 있어 물건은 마트에서 사고 겨우 생선 등 해산물만 오일장에서 산다. 이미 오래전에 길심씨의 어머니, 나의 외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나의 이모인 길심씨의 언니는 진즉에 자식 따라 서울로 이사를 갔다. 이제는 장에서 누구를 만나게 되기라는 설렘도 사라졌다. 씨름판, 윷놀이판도 벌어지고 발 디딜 틈 없었던 예전의 장날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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