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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홍 Feb 27. 2024

10년 만난 남자와 파혼했다

이별을 먼저 꺼낸 사람 







“나야... 잘 지냈어...?” 

“.....” 



“미안, 놀랐지...?”

“무슨 일이야?” 



그는 나에게 연락하면 안 됐다. 




나는 그와 결혼할 뻔했다. 아니 결혼의 문턱까지 갔다. 상견례를 하거나 청첩장을 돌리진 않았지만 둘이 식장까지 보러 다녔다. 강남에 그 많은 식장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함께 시식도 했다. ‘여기는 맛이 별로네, 여기는 손님들이 좋아하겠다’ 하며 밥 하나에 낄낄 거리며.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나는 그와 결혼할 줄 알았다. 그가 군대에 간 2년을 제외하곤, 내가 해외연수를 떠났던 1년을 제외하고는 10년 가까이 함께 했으니. 



하지만 내가 막 서른이 됐을 때,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막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고 그 역시 새롭게 시작한 사업으로 정신이 없을 때였다. 




“그만 만나, 우리” 




이별을 먼저 꺼낸 건 나였다. 이제는 서로가 너무나 익숙해서 가족처럼 느껴질 즈음. 서로의 이직과 복잡한 집안 사정 등으로 한동안 소원했을 즈음. 이렇게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결혼하는 건가 싶다가도 결국 언젠가는 헤어지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을 즈음.  



갑자스런 이별 통보에 그는 놀란 듯했다.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마치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듯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  




"... 뭐 하나만 묻자” 

“뭔데” 

“왜 지금이야...?”

“... 뭔 소리야. 그냥 그러고 싶어” 

“그러니까 왜 지금 그러고 싶냐고”

“뭐, 그럼 뭐 특별한 날이라도 있어?”




나는 사납게 대꾸했다.  




“나 이렇게 생각한 거 오래됐어. 우리 사이 안 좋은 거 오빠도 알았잖아” 

“아니, 그러니까 왜 지금이냐고!”





처음이었다. 그가 그렇게 화를 낸 건. 

도통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자기감정도 컨트롤할 줄 모르던 나와 달리 그는 늘 침착했다. 내가 괜한 짜증을 내도 그저 허허 웃으며 여유롭게 받아치던 사람이다. 








“오빠, 나 살찐 것 같아?” 

“아니, 자기가 살도 쪄?” 

“아니, 진짜 그러지 말고. 자세히 봐 봐. 이것 봐, 뱃살. 여기 여기.” 



“아니, 뭐야. 도대체 어디까지 매력적일 작정? 이제는 뱃살까지 사랑스러울 셈인가?!”

“아니이 이 이이 이- 쪼오오오옴! 장난치지 말고” 

“하하. 자기야. 살쪄도 돼. 살쪄도 안 쪄도 예쁘니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마”




늘 나를 안심시켜 주던 사람이었다. 불안정하고 불안하고 화가 가득했던 나를 늘 잔잔하게 가라앉혀 주던 사람.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늘 변하지 않는 태도로 나를 안심시켜 주었던 사람. 그를 만난 건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행운이었다. 







그의 감정이 점점 끓어올랐다. 



“나 이제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왜 지금이야?  너 왜 그러는 거야? 나한테 왜 이래?” 

함께 있던 차 안이 울렸다. 



“....”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했어. 근데 이제 아니야. 근데 왜 하필, 왜 지금? 이렇게 헤어지는 게 말이 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널따란 어깨가 흔들렸다. 그의 친구가 일찍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의 아버지가 부도를 내고 가족끼리 쫓겨 다닐 때도 울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내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아이처럼 울고 있다. 꺼이꺼이. 




“... 그만해”




나는 당황할수록 차가워진다. 못된 년. 어릴 적 엄마 아빠가 무섭게 싸울 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집에 온갖 접시가 날아다닐 때 나는 흐느껴 우는 대신 차라리 무뎌지고 차가워지는 쪽을 택했다. 이건 오래된 학습의 결과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어. 이 정도 만났으면 됐지 언제까지 만나? 나랑 진짜 결혼이라도 할 줄 알았어? 웃기지 마. 난 결혼 안 해. 우린 어차피 안 됐어’ 




우리 집은 가난했다. 그의 집도 가난했다. 나도 그도 그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이제 막 서른이 되었고 직장은 얻었지만 박봉이었다. 그도 회사를 그만두고 새 일을 시작했다. 나는 불안했다. 그가 계속 나에게 잘해줄까 봐, 그래서 그를 계속 사랑할까 봐. 




그토록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붙어사는 부모님처럼, 돈 때문에 도망 다니던 그의 부모님처럼. '너네 때문에 이렇게 산다, 너네 때문에 헤어지지도 못한다' 자식에게 대못을 박던 그들처럼 될까 봐.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차마 놓지 못해 정말 결혼이라도 하게 될까 봐. 




나는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을 서둘러 식혔다. 




“.... 그만해. 나 먼저 갈게" 




나는 서둘러 나와 버렸다. 아이처럼 울고 있는 그를 두고. 




나는 도망쳐야 했다. 그래서 그에게서 도망쳤다. 이제 그의 인생은 내 알바가 아니다. 그러니 나는 그의 슬픔에 책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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