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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홍 Mar 19. 2024

빚만 잔뜩 지고 온 전 남친

이게 왠 날벼락










그가 나를 본 건지 안 본 건지 긴가 민가 하던 그 밤, 얼마 후 그에게 연락이 왔다. 




‘나야, 잘 지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하루가 지난 후에야 답을 보냈다.





우리는 며칠 뒤 만났다.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어두운 위스키 바에서. 이렇게 만나는 게 얼마 만인지.





"오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툭 쳤다. 평소와 다른 하이톤 목소리로.        



"어.. 어. 와, 왔어...?"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뭐야, 왜 이렇게 어색하게 대답해. 사람 뻘쭘하게"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마주 보지 않는 자리인 건 참 다행이었다.





“잘 지냈어?”

“응, 잘 지냈지. 넌?”

“나도 잘 지냈지. 가게 잘 되는 것 같더라”

“역시 알고 있었구나. 응, 생각보다 잘 돼”

“다행이다 정말”




.....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가까이서 보니 살이 많이 빠진 걸 제외하고는. 예전에는 아저씨처럼 배가 나온다고 푸념했는데.




“가게 일이 힘든가? 엄청 홀쭉해졌어”

“그냥 뭐. 재미있어”

“잘됐다. 전부터 하고 싶었잖아. 오빠 가게.”

“응 맞아




....





“근데... 물어봐도 돼? 갑자기 왜?”

“그냥.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흠... 그러쿤.. 아, 맞다. 전에 하던 일은 어떻게 됐어?”

“전에 하던 거? 그건 망했어, 쫄딱.”




“... 망했다고?”

“응. 망했어. 그래서 빚만 잔뜩 생겼어”

“빚...? 얼마나?”

“음... 몇 천...?”




“허얼... 괜찮아? 그럼 가게는 무슨 돈으로...? 어머, 미안 나 너무 캐물었지”

“아니야, 괜찮아. 뭐 어때. 가게는 투자받은 거야. 거래처 사장님한테”

“아...”

“나 아직도 회사 다녀. 회사에 말했거든. 낮에는 회사 영업하고 저녁에는 가게서 일해. 그래서 사실 엄청 피곤해”

“헙... 안 힘들어?? 잠은 어떻게 자?”

“가게서. 마감하고 대충 씻고 주말에 본가에 다녀오고”

“대에박...”






그는 열심히 살고 있었다. 전보다 훨씬 더. 빚만 잔뜩 졌다니 더 열심히 살겠지. 원래 성실한 거 빼면 시체니까.




“너는? 직장 잘 다니고 있어?”

“나야 뭐 똑같지. 그나저나 부럽다- 사장님이라니”

“뭐가 부러워, 그냥 바지사장이야”

“그래도. 직원도 있고 알바생도 있고. 그럼 사장님이지”




“흠... 그래도 월급 받는 게 제일 편하더라”

“하아... 편한 건 재미없어...”

“인생을 뭐 재미로 사나”

“맞아. 그래도 재미있으면 좋잖아”

“재미있으면 좋지- 나도 재미있게 살고 싶다”



우린 씁쓸하게 웃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은 없고...?”

침묵을 틈 타 내가 물었다.



“음... 없어. 넌?”

“나도 없지. 뭐, 썸은 있었어. 연애도 몇 번”

“아주 능력자구먼”

“능력자는. 오래됐잖아. 오빤? 연애 안 했어?”

“... 했지”

“누구?”

“하하, 누구긴 누구야. 너 모르는 사람”



“그래도, 말해 봐. 어떻게 만났는데?”

“흐음... 말하면 너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내가? 왜? 뭐, 어때. 이제 여친도 아니고. 그냥 말해봐”

“음... 가게에서 일하던 친구야, 어려”

“가게? 몇 살?

“열 살 어려”

“허얼(진심으로 놀람)... 아니, 이 사장님 이거 안 되겠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티나 났을 것이다. 그 사이 열 살이나 어린 친구를 만났다니. 대체 무슨 기대를 했던 거야. 




“넌? 누구?”

“나도 오빠 모르는 사람"



나도 연애를 몇 번 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흐지부지 해지거나 짧게 끝나버렸지만.




“근데 뭐, 다 잘 안 됐어. 알잖아. 나 이상한 거”

“맞아. 알 것 같아”

"... 뭐래냐 -_-"

“하하”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웃었다. 크게 소리 내어. 묘하게 안심이 됐다. 그의 냄새, 그의 웃음소리.   




“한잔 더 할까?”

“그럴까?”

“너 술 많이 늘었다”

“그치, 내가 좀 늘었지”




이상하게 술이 달았다. 결국 난 주량을 넘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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