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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성 Apr 16. 2024

마흔에 부모님과 함께 삽니다

노처녀 딸과 부모님의 불편한 동거







“야, 조용히 들어와! 동네 창피하다”     



본가로 다시 들어가던 날 엄마는 영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뺑덕어멈처럼 두 볼에 심술이 그득해서는 이사하는 내내 사사건건 트집이었다.      



“조심히 좀 옮겨. 근데 무슨 짐이 이렇게 많니? 짐 좀 줄여오라니까! 아니, 그건 이쪽!”       



아니, 그래도 하나뿐인 딸인데 이럴 일인가 싶다가도 남들은 손주 볼 나이에 딸내미가 시집도 안 가고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고 하니 엄마 맘도 이해는 간다.  

 



큰 소리 떵떵 치며 독립했던 나였다. 결혼할 줄 알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상실과 절망감에 충동적으로 수도권에 아파트를 샀다.



한창 부동산이 과열된 시기에 거의 꼭지에, 신용대출에 직장 대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혼을 잔뜩 모아 모든 것을 탈탈 털어 산 집이었다. 그렇게 으스대며 당신께서 평생에 걸쳐 산 집을 나는 혼자 샀다고 어깨 뽕이 잔뜩 들어갔었다.




독립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사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집에 있기 힘들어서, 뭐라도 해야 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결혼하겠다면 호들갑은 떨어놓고 막상 남자친구와 허무하게 헤어지고 나니 슬슬 부모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는 그때부터 집에 있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딸이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모습이 스스로도 썩 멋져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도망치듯 집을 나왔건만.    




인간은 역시 겸손해야 한다. 갑자기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자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대출로 산 집이었기에 박봉 월급으로 이자를 감당하기 무리였다.



물론 외로움도 한 몫했다. 도대체 누가 혼자의 삶이 아름답다고 했는가. 텅 빈 냉장고와 적막한 거실,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집에서 나는 얼마 못 가 도망... 아니 잠시 숨 고르기를 위해… 그래,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자.




사실 오래전부터 혼자 사는 멋진 삶을 꿈꿔왔다. 하지만 돈이 따라주지 않았고 높은 월세를 핑계로, 언제인지 기약할 수 없는 결혼을 무기로 부모님 집에 얹혀살았다. 물론 이런 내 마음도 편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부모님과 사는 집이 편했던 적이 있었을까?




나는 부모님의 불행을 지켜보며 자랐다. 회사에 다니던 아빠와 주부였던 엄마가 함께 가게를 차리면서 집의 분위기 달라졌다. 두 분은 매일 같이 다투셨는데, 정말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때가 없었다.




싫은 소리 못하는 아빠와 목소리 큰 엄마가 작정하고 싸울 때면 나는 말리는 것도 포기하고 방에 들어가서, 음악을 튼 채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서로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얼마만큼 잔인할 수 있는지를 두 눈으로 보면서 내 안에는 사랑에 대한 불신과 불안, 냉소가 자라났다. 엄마와 아빠의 불행이 커질수록 내 안의 불행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던 중 결혼이 깨졌다. 이번에는 잘 될 줄 알았건만. 처음에는 이 모든 불행이 엄마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서, 매일 서로를 할퀴고 상처주기 바쁜 집에서 자라서 이토록 불행한 인간이 되었다고.




그래서 독립의 탈을 쓰고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나마 남은 행복이 모두 바닥날 것만 같아서.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별만 달라진 게 없다. 나는 여전히 혼자고 불완전하며 외롭고 쓸쓸하다. 큰소리 떵떵 치던 나는 사라지고 작고 소심해졌다.



그렇게 바라던 결혼도, 더 튼튼한 인간이 된 것도 아니다. 나는 어느새 마흔이 다 됐고,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과 계란 프라이, 전공은 어지르기. 철이 들었냐고? 어림없지.      







"엄마, 이것 좀 버려. 지저분하잖아"

"....."

"엄마, 내 말 듣고 있어?"

"야! 조용히 안 해? 너 그럴 거면 당장 나가!"




어머나, 얹혀사는 주제에 눈치 없이 엄마에게 잔소리를 퍼붓다니. 어쨌든 예순이 넘은 부모 그리고 시집 안 간 딸내미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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