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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홍 Apr 23. 2024

35살 여자의 생에 첫 부동산 강의

이런 세상이 있었어?









 “어어억 어어엉. 엉엉- 엌, 흐으윽 허어어어엉-”      




부모님 댁으로 돌아오기 몇 년 전 나는 오랜 연인과 파혼했다. 원체 차갑고 시니컬한 성격이라 웬만해서 잘 울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날은 30년째 바짝 마른 줄 알았던 눈물샘이 폭발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었다. 엄마가 들을까 두꺼운 이불까지 뒤집어쓰고.

  



파혼을 통해 알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결혼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결혼은 도피처가 아니라는 것을.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까마득했다. 나이는 서른 중반이었고 이제 와서 누구를 만난다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와 헤어지고 보니 20대 때 잘 나갔던 여자는 온대 간데없고 푸석해진 피부와 자존감이 바닥인 여자만 남았기 때문이다.

 


며칠 밤을 방에만 틀어박혀 울고 먹기를 반복했다. 남들은 힘들면 입맛이 사라진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식욕이 당기는지. 하겐다즈 녹차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들고 먹을 때면 잠시나마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하아.. 내 인생은 왜 이러냐...’         

‘짝!’

아이스크림 통이 바닥을 보일 때쯤 등짝 스메싱이 날아왔다. 엄마였다.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아주 그냥 꼴x을 해요... 당장 일어나!”

     



그녀의 말이 맞았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게 과연 얼마 전까지 결혼한다며 설레발을 친 그녀가 맞단 말인가. 며칠 동안 안 감은 머리 하며 꼬질꼬질한 잠옷까지 예전에 한창 유행했던 ‘건어물녀’가 따로 없었다.        


 

‘후아-’



한바탕 씻고 나니 정신이 바특 들었다. '당장 뭘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지?'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다. ‘그래, 결혼은 모르겠고 우선 독립부터 하자'

  





 ‘결혼이 망했다면 혼자서라도 멋지게 살아보는 수밖에’

 



얼마간 집에 처박혀 있다가 내리 결론이었다. 남들은 결혼하고 애도 낳는데 나 혼자 이렇게 처량하게 있을 일이 아니었다.




우선 월세부터 알아봤다. 직장 위치와 교통을 고려해 선택한 곳은 강남. 평일 오후 반차를 내고 찾아온 부동산은 신천지였다. 역삼역 뒷골목에 이렇게 많은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니. 친구들이나 만나러 와봤지 이곳에 이런 원룸촌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역시 세가 너무 비쌌다. 내가 수중에 가지고 있는 딱 3000만 원. 보증금을 낮추면 월세가 너무 비쌌고, 세를 줄이면 보증금이 너무 컸다. 게다가 사장님이 보여 준 방은 하나 같이 코딱지만 하고 해는 잘 들지 않고, 주위에 술집이 너무 많았다. 이런 곳으로 가는 건 거의 유배다, 유배.




한 가지 신기한 건 작은 빌라 주차장에 죄다 비싼 차들 뿐이라는 것이다. 자동차에 붙은 엠블럼들이 마치 서로 뽐내기라도 하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사장님, 차들이 다 좋네요"

"업소분들 거지 뭐"




사장님은 말해 놓고 '앗차'싶은 표정이었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 직업여성이라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결국 월세 살이를 포기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래, 그냥 집을 사자!'




이제 남은 건 이 알량한 몸뚱이 하나뿐, 남은 인생을 위해서는 그럴듯한 집이라도 있어야 했다.



'남들은 다 결혼해서 새 아파트 들어간다는데 나라고 새 집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어? 이제 절대 구질구질하게 안 살 거야'



그날부터 부동산 강의부터 알아봤다. 인터넷 카페에서 알아본 강의는 4주에 80만 원. 박봉인 나에게는 거금이었지만 투자라고 생각하고 즉시 결제했다.



하지만 난생처음 듣는 부동산 강의는 그야말로 외계어였다. 교통, 일자리, 인프라, 학군. 집 하나 사는데 왜 이렇게 따질게 많고 레버리지, 분양권, 프리미엄 이건 다 무슨 말...? 취득세, 양도세 이건 또 뭐야?? '수포자'인 나에게는 공대 강의만큼 따라가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몇 달이 지나자 강사님이 말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분양권 거래란 아파트가 완공되기 전 들어갈 권리를 사고파는 것이었다. 리셀처럼 웃돈을 주고. 그리고 이윽고 든 생각,



‘아니, 정말 사람들이 이렇게 돈을 번다고?’  

 



서른이 다 되어 안정적인 직장을 잡았을 때, 이제 더 이상 옮겨 다니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때 남은 목표는 딱 한 가지였다. '결혼만 잘하자!'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옷은 세일기간에만 사고 그 흔한 명품백 하나 사지 않고 돈을 모았다. 그래봤자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풍족하지 않은 집안 환경 때문에 이렇게 라도 해야 결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처럼 '취집' 혹은 '상승혼' 같은 걸 꿈꾸지 않은 건 아니다. 당시 나는 남자들이 선호한다는 직업을 갖고 있었고 나름 인기도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결혼만 잘하면 내 인생 피겠지'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 가는 사람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잘생긴 사람은 부담스럽고 전문직 남자는 만나기도 전에 주눅부터 들었다. 돈 많이 버는 남편의 비위를 맞추며 사느니, 부자 시댁 커튼 빨며 사느니 그냥 마음 편한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졸업 취업 결혼. 이것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어른들 말이 다 맞기만 한 건 아니란 걸 그때 깨달았다. 이제 나는 내 마음대로 살 거다. 누가 뭐라고 하든. 여기선 사람들이 아파트로 돈을 번다고 한다. 그것도 연봉의 몇 배나 되는 큰돈을.



'까짓 거, 나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어렵기만 했던 첫 부동산 강의 | 수강생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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