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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후반 이별이 준 교훈

그렇게 사랑이 끝났다

by 새로운





인간은 나약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400만 원을 내야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결정사를 거쳐, 소개팅 어플, 돌싱남에게 돈까지 빌려주고 나니 자기 객관화가 저절로 이루어졌다. 역시 사람은 고생을 좀 해봐야 하는 건가.



그 후 그의 소식은 들은 바가 없다. 지인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알게 되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 것이고 결국 내가 그에게 돈을 빌려줬던 이야기까지 할 것 같아서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인생사 새옹지마. 살면서 이 말처럼 맞는 말도 없다. 그와 만나고 있을 땐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는데. 온 세상에 걱정이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에게 사랑이 그랬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걱정도, 지옥 같은 현실도 모두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 어떤 장애물도 없었다. 하지만 사랑이 끝나고 나면, 문득 혼자라는 사실에 까무룩 놀라곤 했다.


사랑이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같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몇 번만 사 먹어 보면 내 스타일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는. 민초처럼 호불호도, 리스크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실패해도 ‘으으,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하고 마는 딱 그 정도의 달큼하고 시큼한 정도였으면.



불처럼 뜨거웠던 사랑과 차가웠던 이별, 그 후폭풍과 폭풍이 지나간 후의 평온함을 몇 차례 겪다 보니 이제는 나의 인생이 마치 남의 것인 듯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아찔한 높이에서 떨어지는 아름다운 폭포수를 바라보듯 나의 사랑도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며 나는 그렇게 또 한 뼘씩 한 뼘씩 자라게 된 것 같다.




분명한 건, 나는 이 경험들을 통해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사랑받으며 큰다는데 나는 이별 덕분에 더 큰 사람이 되었다.



서툰 인간관계와 사람에 대한 불신, 실종된 인류애, 온갖 부정적인 경험들이 실타래처럼 엮어 온통 나쁜감정들이 가득했던 내 세상이 그래도 조금씩 달라졌다.




큰 일을 여러 차례 겪다 보니 알게 됐다. 세상만사 그렇게 심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 지금은 당장 죽을 것 같더라도 결국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영원한 사랑도,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절박함도 결국 순간의 감정일 뿐이라는 걸.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다 만나보니 오히려 꼬인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역설적으로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할까.



역시 세상에 좋고 나쁜 건 없다. 모두 나의 해석일 뿐.




이제 나에게 세상은 어둡고 무서운 곳이 아니라 아름답고 밝은 곳이다. 덕분에 나는 이제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고 맑고,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본다.




살아가는데 혼자냐 둘이냐, 사랑받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더 중요한 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스스로에게 애정을 쏟는 것, 차가운 마음을 녹여 조금 더 따뜻한 온도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



나를 아끼는 만큼 상대도 아껴주는 것. 이게 수많은 이별을 겪은 후 내가 깨달은 교훈이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절대 연인에게 돈은 빌려주지 말 것(웃음).


한 여름밤의 꿈같던 사랑이 이렇게 또 막을 내렸다. 부디 다음 에피소드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내 생에 다음 시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30대 사랑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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