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나는 한 차례 돈을 더 빌려 주었다.
맞다. 나는 아마 그때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정확히 2천만 원.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사실 그때의 감정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스스로 견디기 힘든 순간의 기억은 자동적으로 축소시키거나 지워버리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가 말한 그날.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카톡의 ‘1’이 지워지지 않았다.
분명 어젯밤까지 연락을 했는데. ‘늦게 잤나...'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최근까지 미팅에 일에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직 일어나지 않겠거니 했다.
오전 11시가 됐을 무렵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카톡'
오후가 다 돼서야 그에게 카톡이 왔다.
‘자기야, 나 오늘 너무 바빠서 전화를 못 받았어. 오전 거래처 미팅이 있는데 늦게 나왔네. 오늘 일이 많아서 이따 집에 가서 연락할게'
순간 안도와 당황이 교차됐다. 그리고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왔다.
'돈만 다시 받으면 바로 헤어진다. 그리고 다신 연애 따윈 하지 말아야지'
당시 내 마음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사무실로 찾아가고 싶었지만, 나의 망상일 뿐,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그에게 전화가 왔다.
“와 오늘 너무 바빴어”
나는 이미 차분해진 후였고, 어떤 사정이든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장황하게 말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말에 따르면 그날 하루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사무실에 오자마자 카톡을 보내고 미팅이 길어져 결국 술자리까지 가서 영업을 했다고.
나는 이미 모든 부정적인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였기에 그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