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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과 헤어지다

by 새로운






‘미안한데 오늘 꼭 돌려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좀 급해서 ‘



뭐라고 뭐라고 복잡하게 말하는 그에게 나는 그저 말할 뿐이었다. 냉랭한 나의 태도에 그는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는지 다음 날 바로 돈을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짧은 반나절도 걱정에 밤 잠을 설쳤다. 불신의 밤. 그동안 우리가 만났던 기억, 다정했던 그 사람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란 인간은 뭘 하는 사람인지 내가 한심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다행히 그는 며칠에 걸쳐 돈을 송금했다. 500만 원씩, 네 차례에 걸쳐.




그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부러 나를 힘들게 하기 위해서라서나 정말 여자친구의 돈이라도 떼먹을 의도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하지만 그 사이 나는 너무나 지쳤고 무엇보다 그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그는 몇 번이고 나를 붙잡았다. 내가 왜 헤어지자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오해가 있다면 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오해라면 그저 오해로 두고 싶었다.



그가 처음 돈을 갚는다고 했던 그날, 아무 말도 없이 나와의 약속을 어겼던 그날, 사실상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다.




인생을 절반쯤 살아보면 알게 된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지' ‘얼마나 믿음을 주는지’라는 것을. 사랑도 결국 인간관계이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제일 중요한 건 무엇보다 신뢰이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아찔한 경험이었다. 그가 사기꾼은 아니었지만 돈을 되돌려 받기까지 겪었던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분명 이자까지 더 해서 받아내야 했다.



어쩌면 그에게 그 돈은 그렇게 큰돈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조금 늦어졌을 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나는 그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완전히 상실했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홀로 불안했고 지쳤다



그가 나를 붙잡으며 반복했던 말이 있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너는 모를 거야…

나 너 정말 사랑해. 처음이야'



나는 속으로 삭였다.

‘너도 모르잖아. 내가 얼마나 마음을 조렸는지…’




헤어지는 과정에서 그에게 이런저런 속마음을 말하진 않았다. 말해 봤자 달라질 건 없었고, 혹시나 그의 설득에 내 마음이 달라질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모든 마음을 쏟아 내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어쩌면 그에게 얼마 안 될지 모르는 그 돈이 나에게는 잠을 설칠 만큼, 이별을 결심할 만큼 너무나 큰 것이었기에.



혼자 끙끙 앓는 사이 그에 대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정리됐고 그에 대한 애정도 함께 사라졌다. 그 사이 어지러웠던 내 마음도 상당 부분 돌아왔다.




나는 정말 그를 믿었던 걸까? 아니면 그가 가진 배경을 믿었던 걸까?

그의 두 번째 와이프 따위는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사랑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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