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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첫 만남, 그 포차

이상한 삼각관계

by 새로운






내가 공식적으로 성인이 되던 날,

나는 수능을 완전히 망치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망막했다. 내가 바닥인지, 바닥이 나인지 거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던 그때 오빠에게 문자가 왔다.



‘뭐 하냐’

‘뭐 하긴. 그냥 누워있지’

‘나와, 집 앞 포차야’

‘포차? 왜 가? 안 가.’

‘한결이 있는데...’

‘..... 기다려봐’



오빠는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홍당무처럼 빨개지는 얼굴만 봐도 안다고 했다. 오빠는 그도 나에게 관심이 많다고 했다. 친구들끼리 있을 때 내 이야기를 자주 물어본다고. 내가 귀엽다면서. 오빠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고.



놀라웠다. 정말 그가, 우리 학교 스타였던 그가 나에게... 오빠는 농담 반 진담반 말하곤 했다. ‘그래도 한결이 정도면 믿을 만하지. 걔는 남자가 봐도 괜찮은 놈이야’ 라면서. 오빠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가 더 좋아졌다.



나는 용기를 가지고 나가기로 했다. 이때가 아니면 그를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질끈 묶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를 걸어가는데 심장이 두 근 반 세 근 반, 콩딱 콩딱 뛰었다. 가는 길이 엄청나게 멀게만 느껴졌다.



‘가면 무슨 말을 하지? 내가 못 생겼다고 생각하며 어쩌지..?’



온갖 쓸데없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휘저었지만 바보처럼 돌아갈 순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포차 앞.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심호흡을 한 뒤 들어갔다. '스흡-' 그리고 드디어 그를 만났다. 그가 내 앞에 있었다. 바로 내 앞에. 그는 나를 보더니 싱긋 웃었다.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어묵탕에 소주 2명을 비운 후였다.



“저녁 먹었냐? 뭐 먹을래?” 오빠가 물었다.

“괜찮아” 나는 그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대답했다.



“푸힛, 너 왜 얼굴이 또 빨개지냐?” 오빠는 이때라는 듯 나를 놀렸다.

“아, 쫌!”



그는 그런 나를 보고 또 한 번 웃었다. 오른쪽 보조개가 살짝 들어갔다.



‘어엇, 귀, 귀엽다...’ 나는 순간 그 보조개에 당장, 아니 영원히 빠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의 얼굴이 발그스름 했다. 술이 살짝 취한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너무 쑥스러워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다음 기억나는 거라곤 우리가 함께 노래방에 갔다는 것, 그리고 오빠와 그가 목청이 터져라 임재범의 ‘고해’를 불렀다는 것.



오빠와 그의 엉터리 화음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음정도 박자도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리고 그는 곧 술에 취해 잠들었다. 오래된 페이즐리 무늬의 노래방 소파에 기대어. 내가 용기를 짜내어 부른 자우림의 ‘미안해 널 미워해’를 자장가 삼아.



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나는 스무 살, 그는 스물두 살.



하지만 나는 곧 재수생이 되었다.







사진 :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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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