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서막,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나야... 잘 지냈어...?”
“.....”
“미안, 놀랐지...?”
“무슨 일이야?”
몇 년 만에 그에게 온 연락. 이렇게 연락하면 안 되는 건데.
우린 10년을 만났다. 그가 군대에 간 2년, 내가 해외에 있던 1년을 포함해 꽤 오랜 시간이다.
나는 그와 결혼할 줄 알았다.
상견례를 하거나 청첩장을 돌리진 않았지만 때가 되니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둘이 들뜬 마음에 식장까지 보러 다녔다. 강남에 그 많은 식장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함께 시식도 했다. ‘여기는 요리가 맛있다, 여기는 꽃장식이 예쁘다’ 며 키득키득 거리며.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하지만 우리는 헤어졌다. 이제는 서로가 익숙해서 가족처럼 느껴질 즈음. 이렇게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결혼하는 건가 막연히 생각했을 즈음.
이별을 먼저 꺼냈던 건 나였다. 자주 가던 커피숍에서.
“그만 만나, 우리”
그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개를 들어 한참이나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 왜 그러는 거야?"
”진심이야. 장난 아닌 거 알지?"
”“....”
“뭐 하나만 묻자”
“뭔데”
“왜 지금이야...?”
“... 뭔 소리야.”
“왜 지금 헤어지자고 하는 거냐고”
“그럼 언제 말하는 게 좋은데?”나는 차갑게 대꾸했다.
“오빠도 알고 있었잖아.”
“... 랐어”
“뭐?”
“몰랐다고.... 너는 왜 항상 네 멋대로 생각해? 몰랐어!”
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커피숍에 있던 사람들이 흘끔 이쪽을 쳐다봤다.
“목소리 좀 낮춰”
“아니 안 낮춰. 안 낮출 거야. 넌 항상 이런 식이야. 왜 또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론 내려? 넌 너 밖에 안 보이지. 온통 자기 생각뿐이어서 남 따윈 중요하지가 않지. 난? 내 감정은? 미리 말을 하면 되잖아.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왜 맨날 너는 네 생각뿐이냐고!”
도통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자기감정조차 컨트롤할 줄 몰랐던 나와 달리 그는 늘 침착했다. 내가 이유 없이 짜증을 내도 그저 허허 웃던 사람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감정에도, 이기적인 나에게도 늘 한결같던 사람.
“아무튼 난 그래. 먼저 갈게”
“가기만 해 봐. 정말 끝이야”
“...”
나는 고민 없이 커피숍을 나왔다.
‘어차피 헤어질 거. 아름다운 이별이 어디 있어.’
마음이 복잡해 정처 없이 걷고 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한테 정말 왜 그래…. 이러지 마 제발...”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울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달라질 건 없어… 끊을게”
당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이제 막 서른이 되었고 직장은 얻었지만 박봉이었다. 그도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나는 불안했다. 그가 계속 나에게 잘해줄까 봐, 예전처럼 나도 그를 계속 사랑할까 봐. 그래서 도망쳤다. 그에게서. 나에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