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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연습생과 첫 키스

by 새로운





지긋지긋한 재수생활의 끝.



나는 눈이 퀭하도록 공부한 끝에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다. 원하던 대학에 합격 통보를 받은 날, 날아갈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모두 다 헤어진 후 알딸딸한 정신으로 집에 들어가던 밤, 까만 밤하늘에 별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가 생각났다. 나는 1년 만에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따라 별이 참 밝아요’



얼마나 지났을 까, 잠시 뒤 답장이 왔다.


‘로운이구나. 시험은 잘 봤어?’


그는 나라는 걸 금세 알아보았다 그 사이 내가 휴대폰 번호를 바꾸었음에도.



‘오빠... 지금 뭐 하세요?’



집이라는 그의 답에 나올 수 있냐고 말해버렸다.

맞다, 술기운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가 나왔다. 하늘색 오버 사이즈 저지 셔츠에 당시 유행하던 커다란 힙합 바지를 입고. 긴 머리는 드레드를 땋고 머리에 네이비 두건을 두른 채.



오랜만에 본 그는 여전히 아니, 몇 배는 더 멋졌다. 그의 후광이 어두운 밤을 뚫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뭐야, 우리 로운이 대학생 된 거야?"

"헤헷, 네..."

"이야, 이제 진짜 성인이네"

"하핫... 네 맞아요..."

"술 마셨구나?"
"네? 아, 그것도 맞아요... 헤헤.."



그는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았다. 대신 큰 아버지 회사에 일을 배우러 들어갔다. 당시 꽤 유명하던 걸그룹 소속사를 운영하던 그의 큰 아버지는 그의 외모가 아까웠는지 준비 중이던 보이그룹에 그를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3인조 아이돌 그룹의 연습생이 되었다.



“근데... 오빠 노래 잘 못하잖아요”

“그래서 내 파트는 다 짧아”

“아… 큭큭”

“웃기는, 그동안 공부 열심히 했어?”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심장이 쿵쾅댔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그럼요, 진짜 열심히 했다고요”



정말이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가장 치열하게 공부했다. 이번에도 수능을 망치면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했기에 하루하루 벼랑 끝에 있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고생했어. 넌 잘할 것 같았어"

“... 오빤 어떻게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그는 함께 연습하는 친구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모두 개성이 넘쳤다. 나는 그의 휴대폰 사진을 보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어깨가 내 어깨에 살짝 닿았다.



“얘가 지민이야. 랩을 정말 잘해”

지민 오빠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턱이 뾰족했다. 날카롭고 강렬한 이미지.


“이 사람은 태원이 형. 성격이 좋아. 노래를 정말 잘 불러”

태원이 오빠는 둥글둥글한 인상이었다. 아이돌이라기에는 살짝 통통한 것 같았지만 인상이 좋아 보였다.


“오빠는요?”

“음… 나는 미모 담당...”

“크하, 뭐야 재수 없어…”



우리는 별 거 아닌 이야기들로 키득키득 댔다. 나는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고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렇게 옆에 꼭 붙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남자친구는.. 없어?”

“없어요”

“왜? 인기 많을 것 같은데”

“음… 많죠. 근데 공부만 했어요”
“참나, 아니라고는 안 하네”

“네, 전 거짓말은 못해요”

“하하, 솔직해서 좋다”



“오빠는요?”

“없지”

“그때 그 언니랑은 헤어졌어요? 그 무서운 언니”

“누구? 아… 오래전에 헤어졌어”

“왜요?”

“음… 그 친구가 바람이 났거든”

“헐. 대박. 그 언니 그럴 줄 알았어”

“음… 그래? 나는 몰랐는데…”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하늘의 별을 쳐다보았다. 까만 하늘에 별이 총총히 떠있었다. 새벽이 다된 밤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간혹 몸을 가누기 힘든 취객들이 비틀거리며 지나갈 뿐…



나는 술기운에 아직도 몽롱했다.


“진짜 오늘따라 별이 많네….” 그가 말했다.



고개를 돌려 살짝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날렵한 턱선과 오뚝한 콧날. 새하얀 피부. 웃고 있는지 그의 오른쪽 보조개가 살짝 파여 있었다. 나는 그의 보조개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평소라면 수줍어서 눈도 맞추지 못했을 텐데… 이럴 땐 술이 좋다.



“... 저 오빠 많이 좋아했어요…”

“커걱, 뭐… 뭐라고?”

“좋아했다고요”

“으이그, 바보야 그런 건 남자가 먼저 이야기하는 거야”

그가 내 머리를 헝클어 뜨리며 말했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말하고 싶은 사람이 먼저 말하는 거지…”

“하하하. 너 진짜 재미있다”

“진짜예요. 저 오빠 오래, 많이 좋아했어요”

“… 알아”

“어떻게요?”

“나도 너 많이 기다렸거든”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쁘다” 그가 말했다.

"... 네?"

"너 진짜 예쁘다고"


그리고는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생에 첫 키스였다.







사진: SBS 드라마 <그 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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