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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짝사랑, 나의 첫사랑

부디 저를 업고 튀어주세요

by 새로운





“오빠, 나 살찐 것 같아?”

“아니, 자기가 살도 쪄?”

“아니, 진짜 그러지 말고. 자세히 봐봐. 여기 뱃살, 여기”

나는 그의 손을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배로 가져갔다.



“뭐야. 도대체 어디까지 매력적일 작정? 이제는 뱃살까지 사랑스러울 셈인가?!”

“아니 이이이- 쪼오오옴! 장난치지 말고”

“하하. 자기야. 살쪄도 돼. 살쪄도 안 쪄도 예쁘니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마”



늘 나를 안심시켜 주던 사람. 불안정하고 화가 가득했던 나를 조용하게 다독여 주던 사람. 그를 만난 건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행운이었다



_______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다.



그를 혼자 짝사랑하게 된 것도 그쯤이다. 그는 학교에서 꽤 유명했다. 잘 나가는 선배들이 모인다는 댄스 동아리의 일원. 잘생기고 춤도 잘 췄다. 껄렁해 보이고 허세 가득한 친구들과 몰려다녔지만 그는 왠지 달라 보였다. 말이 없고 예의도 발라 보였다.



그는 우리 오빠의 친구였다. 중학교 동창, 동네 친구. 10대 소녀에게 오빠 친구는 곧 아이돌과 동급이란 소리다. 커다란 눈, 긴 속눈썹, 조막만 한 얼굴, 넓은 어깨. 그는 나에게 만화 주인공 같은 존재였다. 마치 <슬램덩크>의 서태웅 같은. 보고만 있어도 좋은, 생각만 해도 얼굴이 발그레지게 만드는.



우리 오빠는 종종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곤 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그럴 때면 나는 졸지에 방에 갇히고 말았다. 나는 사춘기 소녀였고 그들이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거실을 가득 채운, 테스토스테론 향 가득한 덩치 큰 남자들을 자연스럽게 대할 용기가 없었다.



그런 날은 화장실을 참는 건 물론이고 학원에도 늦었다. 수컷들이 가득한 거실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기가 왜 그렇게 힘들던지... 결국 기다리고 기다리다 학원에 더는 늦을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온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현관문을 향해 달리곤 했다. 오빠들은 이때다 싶어 나를 놀려댔다.



“햐아- 로운이 이제 어른 다됐네! 이뻐졌다!”

“학교에서 힘든 거 있으면 오빠한테 말해, 해결해 줄게!”



하지만 그런 장난이 영 싫지만은 않았다. 수염이 거무스레하게 난 남자들 무리에서도 사슴처럼 꼿꼿이 앉아있는 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최고 속력으로 현관문을 나갈 때면, 어설프게 운동화를 구겨 신고 있을 때면 그는 아무 말 없이 싱긋 미소를 짓곤 했다. 나는 그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학교에서도 가끔 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3학년 학년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매점이었다. 나는 600원짜리 뽕따를 핑계로 친구들을 꼬드겨 이제나 저제나 그가 오길 기다렸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저기 저 멀리서도 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나의 신묘한 능력 덕분에 나는 멀리서도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빳빳하게 다린 하얀 교복 와이셔츠에 통이 넓은 교복바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걸어오는 그를 마주칠 때면 모든 것이 슬로 모션으로 변했다. 맞다, 그에게선 분명 빛이 났다.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인사했다. 얼굴이 발그레해져 수줍게. 몸을 비비 꼬며.



“아, 안녕하세요”

“어, 로운이 안녕. 아이스크림 사줄까?”

“앗, 아니요.. 괜찮아요”

“그래, 그럼. 다음에 사줄게”



단 두 마디 대화였지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뒤에서 내 등을 쿡쿡 찔러대며 킥킥댔다.


"아주 좋아 죽는구만"

"근데 한결 오빠는 좀 부담스럽지 않냐?"

"응, 눈이 너무 커"

"뭐래, 멋있기만 하구만. 샤프하고 신비해..."



점심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올라가는 길, 친구들은 다 먹은 뽕따를 쪽쪽 빨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가 서태웅이자 장우혁이었다.



한 가지 슬픈 사실은 당시 그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예쁘고 잘 나가는 날라리 언니. 긴 생머리에 허벅지에 착 달라붙은 짧은 치마를 입은, 항상 무서운 언니들과 몰려다니던, 얼굴이 새하얀 조 OO 언니. 그 언니는 항상 누군가를 째려보고 있는 것처럼 눈이 쭉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여자인 내가 봐도 예뻤다. 화가 나도록. 당연히 그들은 학교에서도 유명한 커플이었다.



한 번은 그 언니가 우리 반으로 나를 찾아온 적도 있다. 나를 불러내서는 나보고 우리 오빠 동생이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그렇다고 말했다. 사실 좀 무서웠지만 그렇지 않은 척했다. 그녀는 나의 숙명의 라이벌이었기 때문에. 쉽게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도무지 무슨 용기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마음 깊숙하게 그도 나를 좋아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첫사랑이었다.







사진: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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