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 우리는 각자 직장인이 되었다.
그는 작은 주류 회사의 영업사원이 되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꿈을 좇아 부푼 마음을 가지고 들어갔지만 박봉에 일이 너무 힘들었다. 결국 몇 년 간 공부를 다시 해서 이직에 성공했다.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직장이었다.
그리고 30대가 되었을 때, 슬슬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우리 둘 다 경제적 상황도, 마음 가짐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때가 되니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나 싶었다. 물 흐르듯 그렇게.
물론 중간중간 현실적이 걱정이 나를 덮쳤다.
그는 고졸이었고 딱히 가지고 있는 기술도 없었다. 사람 좋고 성실할 뿐,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이상적인 배우자는 아니었다(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연봉이 작았고 그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양가 모두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시장에서 재료상을, 우리 부모님은 작은 식당을 하고 계셨다. 부모님의 돈은 얼마 전 오빠 결혼식에 모두 썼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양가에 도움은 받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에서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하기 시작했다. 남의 결혼식에 갈 때마다 식장은 왜 그렇게 좋고 드레스는 왜 그렇게 화려한 지, 저 집 신랑이 뭘 하고 집안은 어떻다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괜히 주눅 들고 쪼그라들었다. 그럴 때면 이유 없이 그가 미웠다.
‘이 결혼이 맞는 걸까…? 과연 이게 최선일까..? 더 좋은 사람은 없을까? 만약 후회하면, 돈에 쪼들려서 사랑이 사라지게 되면?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대문으로 나간다는 데, 그게 정말이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때부터 결혼해서 불행한 사람들만 보였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너만은 제발 하지 마라’ 하는 장난스러운 말도, 이미 한 번 갔다고 온 선배들의 사연도 남의 이야기 만은 아닌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사랑했고, 사랑이 나를 구원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애정결핍에 외로움이 많던 나는 늘 사랑을 갈구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서도 관심을 원하는 모순적인 나에게 그는 언제나 차고 넘치는 사랑을 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나도 그도 서로가 끝사랑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 둘 다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은 없었다.
한 번은 그와 심하게 다투고 한 달 정도 연락하지 않을 때였다. 그가 너무 화를 내며 시간을 좀 갖자고 했다. 그도 그러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사이 몰래 소개팅을 했다. 친구가 부추겼지만 사실 핑계였을 뿐 그 말고 다른 사람도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남자들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낯설고 계산적이었다.
한 번은 소개팅에 경찰 간부라는 사람이 나왔다. 턱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에 무테안경을 쓰고 나온 남자. 그는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결혼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버지가 교장선생님이고 어머니는 교사라 부모님 노후는 모두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자기가 받고 있는 연수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차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결혼 준비는 모두 끝났다고 했다.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들은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다만 살짝 삐져나온 그의 코털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그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중요한 건 돈이나 조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