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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여수 밤바다

by 새로운 Aug 14. 2024





여수는 우리가 첫 여행을 갔던 곳이다.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가 대히트를 친 후로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여수의 밤바다는 어떤지, 유명하다는 별포차는 어떨지 궁금했다. 주로 가까운 근교만 다니던 우리는 휴가를 핑계로 좀 더 멀리 떠나고 싶기도 했다.

여수는 작고 아기자기했다. 관광지 느낌이 물씬 나는 부산이나 고즈넉한 남해와 달리 해안가 어느 작은 마을을 뚝 떼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혈기 왕성한 20대 남녀를 그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싫어했겠냐만, 처음 와본 여수는 썩 마음에 들었다.



“짜안-!”

“뭐야?”

“생일 이잖아.”

“아직 좀 남았는데? “

“에이, 겸사겸사 챙기는 거지”

“으아- 고마워”



그의 생일은 음력 6월 6일. 어른들이나 챙기는 음력 생일을 왜 그가 챙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몇 주 전부터 그의 선물을 고민하고 있었다.



여름이면 티셔츠 몇 장과 슬랙스 2-3개로 버티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당시 유행했던 파타고니아 티셔츠와 반바지, 모자까지 세트로 골랐다.



마음 같아선 명품 시계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그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현실과 이상의 갭을 사랑으로 억지로 구겨 넣는 것. 그게 20대의 사랑이었으니까.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다.



페레가모 구두. 물론 내가 제 값 주고 산 물건은 아니었다. 친구가 면세점에서 샀다가 사이즈를 잘못 샀다며 나에게 거의 거저 준 신발이었다.



“짜잔-“
 “이건 또 뭐야?”

“오빠, 구두 다 낡았잖아”

“아… 고마워…“



그의 표정이 묘했다. 고마움과 미안함 놀라움이 섞인 듯한 표정.

나는 마치 왕자가 신데렐라 구두를 신기듯 신성한 마음으로 그에게 구두를 신겨주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뒤꿈치에 손가락 하나 아니, 두 개는 들어갈 만큼 공간이 남았다.



“어머, 이게 왜…“

“자기 내 신발 사이즈 모르는구나…”

“아니, 이렇게 크다고? 오빠 280 아니었어?”

“275야.. 구두는 270 신고…”

"푸하하하하, 나 미쳤나 봐"



나는 민망함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그나저나 오래 만난 남자친구의 신발사이즈도 모르다니… 그는 내 신발 사이즈, 옷 사이즈, 속옷 사이즈, 주기까지 모두 줄줄 외우고 있었는데…. 순간 너무나 미안해졌다.



“미안해… 근데 이렇게 클 줄 몰랐어.... 크크 크큭…근데 너무 웃기다. 아빠 신발 신은 것 같아. 풉.. 귀.. 귀여워”

“어때, 신을 수 있지 않을까?”

“못 신어”

"그럼 환불하자"

“못해 킥킥”

“왜?”

“기정이가 나한테 헐값이 넘긴 거야. 택도 없어 못 바꿔. ”

“음, 그럼 내가 발을 키워 볼게.”

“카하하하하. 아니야, 중고나라에 팔자!”

“그래, 팔자!”



당시에는 당근이 없었다. 다음 날 우리는 바로 구두를 팔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맛있는 고기를 사 먹었다.

그는 그 여름 내내 내가 사준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다녔다. 주말이면 반바지에 모자까지 세트로. 내가 제발 그만 입으라고 했지만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그 옷을 항상 입고 다녔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라면서. 결국 목이 다 늘어나고 시보리가 누레지고 나서야 그 옷 입는 걸 그만두었다.



나는 그의 그의 순수함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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