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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 Dec 27. 2023

누군들 리즈시절이 없었겠니?

전성기에 대한 고찰




‘저희는 잘 맞지 않은 것 같아요. 좋은 분 만나시길 바랄게요!’          

      


어렸을 때는 주로 내가 했던 말 같은데 슬프게도 점점 듣는 입장이 됐다. 첫 번째는 어리둥절했는데 두 번째는 부글부글 했고 나중에는 끓는점이 높아진 건지 아예 사라진 건지 잔잔해졌다. 이럴 땐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제는 ‘좋은 사람 만나세요'가 '반가웠습니다' 정도로 들리니 말이다.                


한동안은 늘어나는 나이와 더불어 줄어드는 인기를 실감하며 상대를 욕했다. '당신이 보는 눈이 없는 거라고. 나 같은 사람을 몰라보니 앞으로도 좋은 사람 만나기는 글렀다'고 저주까지 했다.



언제부턴가 상황이 안 좋아질 때마다 젊은 시절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생판 모르는 타인과 나를 놓고 저울질하는 것보다 덜 상처받는 길이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타당한 이유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데 이렇게 반 팔십이 되었다는 게 슬프고 짜증 났다. 남들은 결혼하고 애도 놓고 잘 사는데 나는 아직 내 짝 하나 찾지 못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이람.



게다가 얼마 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한 사건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상형의 남자였다. 온화하고 따뜻하고 느릿느릿한 말투, 이해심이 많고 뭐든 웃어넘기는 성격의 사람이었다. 매사에 심각하고 작은 일도 큰 일로 만들어 버리는 나와는 정 반대라서 좋았다.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같이 연락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건 만,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만나 데이트하고 누구보다 대화도 많이 나누었건만. 결국 돌아온 말은 ‘노력해 봤는데 힘들 것 같아’였다.



별애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제 나는 애써 노력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 건가. 그리고는 한참 동안 거울을 들여다봤다. 달라진 얼굴과 탄력을 잃은 피부, 자꾸만 보이는 단점들을 감추려 더욱 짙어지는 화장까지.      



얼마간 침울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든 건 너무나 오랜만이었기에 더 아프고 힘들었다. 그까짓 사랑이 뭐라고. 나이 들어하는 사랑이 뭐 그렇게 대단하고 애틋하다고. 그러다 문득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언제든 때가 있는 거야. 그때를 지나면 원하는 걸 이루기 힘든 순간이 와. 하지만 사실 그것도 별일 아니야. 지나가면 또 생각도 안나거든”      




그렇다.

지금은 아프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해 보면 언제나 다 때가 있었다. 공부하기 좋은 기간이 있었고 인생에서 가장 젊었던 시기가 있었다. 무슨 일이든 잘 풀리던 시즌이 있었고 도통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던 기간이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고 내가 온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인 것 같은 시간도 있었다.



지금은 일종의 힘든 기간이리라. 한쪽에서 다른 쪽을  넘어오는 기간.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기간. 그러니 견뎌내야지. 이별의 아픔도, 빛바랜 과거도. 과거에 갇히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현재의 나를 인정하는 사람이 되기를. 더 나는 내일을 찾는 사람이 되기를.



오늘은 마스크 팩이나 한 장 붙이고 자야겠다. 내일은 덜 늙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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