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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박가 Jun 26. 2024

밥 좀 주세요! 네~에!

정월대보름 밤이었다

  밥상에 나물이 가득했다. 젓가락으로 고사리, 시금치, 콩나물을 양푼에 한 움큼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 들기름 한 바퀴 쪼르륵 둘러주고 싹싹 비볐다. 숟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아 젓가락으로 나물을 들어주며 세차게 비볐다. 그 사이 입에 침이 고였다. 된장으로 밥을 비벼 물 말아먹던 유별난 셋째는 어느샌가 벌써 한 숟가락 크게 떠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고추장이 덩어리째 풀어지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러나 더 기다리지 못하고 숟가락에 담을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밥을 올려 입에 쓱 밀어 넣었다. 입이 꽉 차 씹히지 않았다. 그래도 비빔밥은 이렇게 볼이 터질 듯 먹어야 제 맛이었다. 쥐불놀이하러 가려고 저녁밥을 서둘러 먹었다.


  큰 양푼과 숟가락, 구멍 뚫어놓은 깡통을 챙겨 다리로 나갔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큰 언니오빠들은 ‘지소’ 논에서 벌써 불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는 몇 명씩 짝을 이루어 동네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제일 먼저 방앗간 아줌마네 집에 갔다.


“하나 둘 셋!”

“밥 좀 주세요! 네~에!”


  우리의 합창에 아줌마가 양푼 가득 찰밥을 담아 주셨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귀한 고기볶음 한 ‘양재기’와 사탕도 한 바가지 주셨다. 온 동네를 다 돌고 나니 양푼에 나물과 밥, 고기가 가득 채워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지소’로 향했다.


 도착하니 논바닥에 군데군데 불이 피워져 있었다. 빈 우유통을 뚫어 만든 창수 오빠의 멋진 쥐불놀이 통이 눈에 띄었다. 나는 집에 적당한 깡통이 없어 동생과 동네를 몇 바퀴 돌다가 과일 통조림 캔 비슷한 걸 겨우 하나 주웠다. 보이지도 않을 바닥이지만 동그랗게 간격을 맞춰 못으로 탕탕 박아 예쁘게 구멍을 뚫었다. 손잡이는 캔 옆구리에 구멍을 내 철사로 묶었다.

  쥐불놀이 전에 언니오빠들과 둘러앉아 고대하던 비빔밥부터 먹었다. 짚단을 깔고 앉으니 따뜻하고 폭신했다. 집에서 배불리 먹고 나왔어도 겨울밤 한 시간만 지나면 또다시 허기가 졌다. 우리는 비빔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먼저 나온 언니와 오빠들은 배가 더 고팠을 것이다. 밥이 차가워지고 국물이 없어도 진수성찬 같았다.


  밥을 먹고 나서 사탕을 입에 하나씩 물고 쥐불놀이 준비에 들어갔다. 깡통에 나뭇조각들을 세워서 촘촘히 잘 넣어줘야 돌릴 때 바람이 통하면서 불이 잘 붙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불씨나 타고 있는 나뭇조각들을 넣어줬다. 불씨를 집어넣을 때 연기를 너무 많이 먹었더니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드디어 다 채웠다. 동생이 먼저 팔을 뻗어 손잡이를 잡고 돌리기 시작했다.  다른 조각들에 아직 불이 붙지 않아 연기만 피어올랐다. 그럴 때는 빠른 속도로 계속 깡통을 돌려줘야 했다.


 돌고 있는 깡통 속에서 불씨나 나뭇조각들이 떨어져 나와 다칠 수도 있으니 항시 조심해야 했다. 또 돌리다가 바로 멈추면 나무들이 통에서 와르르 쏟아질 수 있어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멈추어야 했다. 어느새 쉭쉭 소리가 불꽃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빨간 원들이 활활 춤추고 있었다. 타닥타닥 불꽃들이 날아가며 별을 만들어 내고, 붉은 은하수도 만들어 냈다. 커다란 동그라미, 작은 동그라미, 저마다의 빨간 동그라미들의 향연이었다. 이제 곧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창수 오빠가 분유통을 더 힘차게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멈춰 서서 창수 오빠의 깡통에 시선을 집중했다. 오빠의 동그라미는 하늘에 딱 붙여놓은 듯 일정한 모양을 만들어 냈다. 곧 다 같이 외쳤다.


“하나 둘 셋!!”


  오빠의 깡통이 높은 하늘에 커다란 달팽이를 만들어 내다가 불꽃으로 수를 놓았다.  우리는 모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저 불꽃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제 우리 잔챙이들의 차례였다. 지난번에 깡통을 쉭쉭 돌리다가 던지는 순간을 제대로 잡지 못해 다 쏟아내 버렸다. 이번에는 잘 해내 보고 싶었다. 돌리는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경운기에 시동을 걸듯 있는 힘을 다해 더 홱 홱 돌렸다. 이제 던질 때가 왔다. 숨을 고르고 잡았던 손잡이를 툭 놓았다. 하늘에 작은 달팽이가 만들어졌다. 드디어 나도 해냈다.

   생각하면 더 그리운, 정월대보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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