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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박가 Jun 19. 2024

얼음배

“이제 우리 얼음배 타자!”

썰매를 타다가 지루해질 즈음 누군가 외쳤다. 우리는 작은 도랑의 얼음판에서 떼어낸 판판한 조각을 얼음배라고 불렀다. 찍어내기 좋은 뾰족한 돌을 골라 들고 얼음판으로 갔다. 동생은 벌써 얼음을 찍으며 깨고 있었다. 망치를 사용하면 좋은데 아버지한테 혼날까 봐 갖고 오지 못했다. 얼음판의 시작점인 ‘황소둠벙’ 바위 쪽은 물이 깊어서 물가 바깥쪽 얼음부터 깨는 게 수월했다.


  모두 열심히 돌로 얼음을 딱딱 찍었다. 그때마다 얼음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 얼음 가루로 빙수를 만들며 놀기도 했다. 점을 찍듯 군데군데 내리치면 사이사이로 물이 튀기도 했다. 팔이 떨어질 듯 아파도 계속 돌을 내려쳤다. 어느덧 빠지직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하면 얼음판 중간에 금이 가 반 토막 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마무리는 내 동생이 하기로 했다. 동생은 덜렁대는 것 같아도 이럴 때는 정교한 솜씨쟁이였다. 드디어 큰 얼음판에서 떼어낸 얼음배가 준비됐다. 모닥불을 피우려고 나무하러 갔을 때 길고 곧은 나무 막대기 여러 개를 미리 빼두었다. 그것으로 얼음배에 올라 바닥을 밀어주면 얼음배가 움직였다.


  이제 얼음배가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만 만들어 주면 되었다. 큰 돌을 얼음배가 떨어져 나간 얼음판 가장자리 쪽으로 던져 깨면 되니 식은 죽 먹기였다. 모두 달려들어 큰 돌멩이를 던졌다. 동생은 자기 머리보다 몇 배나 커 보이는 묵직한 돌을 씩씩거리며 들어 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동생의 얼굴에서 불이 날 것만 같았다. 묵직한 돌에 맞은 얼음판 가장자리 얼음이 똑똑 떨어져 나갔다. 어떤 돌은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지며 황소둠벙 큰 바위에 부딪치고는 멈췄다. 나중에는 얼음판 귀퉁이 위에 우리가 던진 돌이 한가득이었다.  


  여럿이 돌멩이를 던지다 보니 어느새 얼음배를 움직일 공간이 만들어졌다. 도랑이 넓지 않아 얼음배는 좌우로만 움직일 수 있었다. 나무 막대기를 하나씩 잡고 동생과 내가 시험삼아 그 위에 올라탔다. 한 번에 다 타면 얼음배가 남아있는 얼음판 밑으로 쑥 미끄러져 들어갈 수도 있다. 또 한쪽 끝이 물에 잠겨 빠질 수 있어서 조심조심 중심을 잡아가며 두세 명만 타야 했다. 동생이 막대기로 바닥을 밀었다. 천천히 얼음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골' 쪽 얼음판에 얼음배가 닿을 때쯤 이제 내가 반대쪽으로 바닥을 밀어줬다. 좌우로 왔다 갔다 할 뿐이지만 그게 마냥 재미있었다.


  시험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얼음배를 가동했다.  아이들 모두 신나 했다. 발이 축축한 느낌이 들어 잠깐 신발을 살펴보는 사이 어린 꼬맹이가 얼음배 한쪽 끝에 철퍼덕 앉아 버렸다. 순간 얼음배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하더니 얼음판 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꼬맹이도 함께 물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이거 잡아!”

  어느새 무릎 높이까지 물에 빠진 동생이 나무 막대기를 그 아이 쪽으로 내밀었다.  중심을 잘 못 잡았던 그 꼬맹이는 겨우 막대기를 잡고 나왔다. 입술이 새파래졌다. 진작 피워둔 모닥불 불씨가 꺼져가고 있었다. 아껴두었던 깻단을 올리고 잔가지들을 같이 올렸다. 불이 확 붙었다. 단단한 나무들도 올려 불붙기를 기다렸다. 꼬맹이는 불 앞에서도 달달 떨었다. 동생은 언제 가져왔는지 넓죽한 돌짝을 의자 삼아 앉아 발을 말리고 있었다. 젖은 발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어느새 어스름이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또 젖은 채로 집에 돌아가야 했다. 불가에서 일어서자마자 무서운 추위가 몸을 파고들었다. 얼음덩이를 올려 불을 껐다. 그리고는 젖은 신발을 신자 머리끝까지 한기가 오소소 올라왔다. 집까지 뛰어가기로 했다. 얼음배 타기는 그렇게 누군가 빠지는 것으로 늘 끝이 나고는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겨우내 어김없이 얼음배를 타러 갔다. 어른이 된 지금도 꽝꽝 얼어붙은 냇가를 지날 때면 뾰족한 돌이 어디 있나 찾게 된다. 그때처럼 몸에서 하얀 김이 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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