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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박가 Jun 12. 2024

소풀 뜯기기

  겨우내 마른 짚으로 끼니를 이어가던 우리 집 소는 봄이 오면 도랑이나 들판의 풀이 많은 곳에 풀어놓아 신선한 풀을 마음껏 먹게 했다. 우리는 이것을 ‘소풀 뜯기기’라고 했다. 아버지는 소풀 뜯기기를 자주 시키셨다. 그것은 고추 따기만큼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큰 덩치한테 끌려다니며 왕벌만 한 쇠파리를 쫓아대는 게 싫었다. 나보다 한참이나 큰 소를 소막에서 몰고 나와 끌며 끌리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싫었다.


  언니와 소 한 마리씩을 끌고 전설 바위가 있는 지소로 향했다. 그곳은 물가라 풀이 무성해 소에게는 천국이었다. 가는 길에 얕은 냇가를 몇 번 건너야 했다. 소를 끌고 갈 때 징검다리는 애당초 포기하고 물길을 따라갔다. 아이들이 동네 한복판 다리 위에서 놀고 있을 때면 나는 더 서둘렀다. 그러나 팔자 좋은 소는 마을 어귀를 벗어날 때까지 주변의 무성한 풀을 다 없애기로 작정한 듯 뭉그적거렸다.

  

 그런 소와 실랑이를 하며 겨우 지소까지 왔다. 이제 ‘돌짝’ 위에 앉아 소가 엄한 곳에 가지 못하도록 감시만 하면 되었다. 소는 큰 눈을 끔벅거리며 반짝이는 초록 풀들을 질겅질겅 씹었다. 꼬리는 쉴 새 없이 찰싹찰싹 쇠파리를 쫓아냈다. 얄미운 쇠파리는 소꼬리에 맞아가면서도 소등짝에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나뭇잎이 다닥다닥 붙은 가지를 꺾어 휘 휘 쫓아냈다. 그러다 소꼬리에 얼굴을 맞아 눈물이 핑 돌았다. 배은망덕한 소한테 부아가 치밀어 올라 씩씩댔으나 소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여전히 눈만 끔벅거렸다. 느리작느리작 느긋한 소 몸에선 오로지 꼬리만 촐싹댔다.


  슬리퍼 한 짝을 벗어서 조준하고 쇠파리를 탁 때렸다. 소등이 빨갛게 물들었다. 때리고 때려도 쇠파리는 어디선가 계속 날아왔다. 논이 많은 중들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언젠가는 중들에서 우리 소가 이웃의 벼를 사정없이 뜯어먹었었다. 그런 날은 코뚜레에 묶은 끈을 아무리 당겨도 소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잘 해결하셨지만 소가 잘못을 해도 우리가 혼나니 감독을 잘해야 했다.


  어떤 날은 이웃의 소가 혼자서 풀을 뜯어먹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소들이 싸우지 못하도록 남의 집 소까지 함께 돌봐야 했다. 다 비슷하게 생겨서 뉘 집 소인지도 모른 채 눈을 흘겨가며 어쩔 수 없이 감시했다. 쇠파리 떼도 어느 순간부터는 잠잠해졌다.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았나 보다. 언니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니 우리 소가 중들 논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어나기 귀찮아서 아무 돌멩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들어 소 앞쪽을 향해 던졌다. 멈칫한 소는 그저 멈추어 섰을 뿐 내 바람처럼 돌아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무거워진 엉덩이를 겨우 들고일어나 소를 풀가 쪽으로 끌고 나왔다. 제법 날이 선선해지고 있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이마를 쓸어주었다. 내려다보니 물에 비친 하늘이 참 맑았다. 소 풀 뜯는 속도가 느려졌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때쯤엔 배부른 소가 길가의 풀을 뜯어먹으려는 욕심을 버려 돌아가기가 수월했다. 소막에 소를 들여보낼 때 바로 들어가지 않아 마지막 실랑이를 한 번 더 벌일 터였다. 그래도 집에 돌아간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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