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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박가 Jul 31. 2024

산길

   인적이 드문 곳에 낮도깨비가 산다고 했다.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우리는 호랑이, 귀신 보다 낮도깨비를 더 무서워했다. 낮도깨비는 혼자있는 아이를 홀려 잡아간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구경을 할 수 없는  산길로 절대 혼자 가지 않았다. 산길은 오르막길이라 힘들고 진흙이 튈 때가 많아서 자주 가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봄이 오면 산이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았다.


   어느 토요일 하굣길에 동네 아이들 여럿이 함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날도 산이 우리를 부르는 듯  오랜만에 산길로 가기로 했다. 산길은 지름길이라 집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고 가는 길에 산딸기, 찔레, 으름, 밤송이를 마음껏 따먹을 수 있었다.  


   언젠가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어서 언니들 뒤를 바짝 쫓았다. 산 중턱에 있는 ‘큰바위’까지만 잘 따라가면 됐다. 그 이후로는 꼬불길이 없어 길을 잃을 일도 없었고 내리막길이라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북에서 내려왔다는 '꺼꺼' 아저씨네 집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산길 초입이었다.


  산길로 들어서자 풀이 무성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뱀 때문에 놀란 적이 많아서 뱀을 쫓으려고 작대기로 풀섶을 치며 걸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이내 산딸기밭이었다.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산딸기를 땄다. 담아갈 봉투나 그릇이 따로 없어서 한 손에 가득 쥘 만큼만 땄다. 딱딱한 건 맛이 없었다. 이미 색이 거무튀튀해진 것도 맛이 없었다. 세심하게 골라낼 틈은 없었다. 눈으로 대충 골라 손으로 훑어 따는 대로 입에 넣기도 하고 한 손에 모으기도 했다.


  산길은 갈 때마다 길이 너무 질척였다. 바지에 다닥다닥 진흙들이 날아와 붙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바닥에 힘들 주고 가다보면 어느새 큰바위에 다다랐다. 큰바위는 넓적해서 여럿이 함께 쉬어가기에 좋았다. 오면서 탈탈 털어 먹어 산딸기가 남지 않았지만 개중에 몇몇 아껴온 산딸기를 나눠주는 마음 고운 아이가 있었다. 산 딸기 한 알을 쪼개고 쪼개 깨알 한알 만한 걸 혀 위에서 굴리며 놀았다. 그러다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잠이 솔솔 올 듯 했다.


   바위 아래에는 신비한 할미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핀 꽃들은 줄기가 대부분 초록이었지만 할미꽃의 줄기는 보랏빛이 감돌았다. 신비스러워 보이는 그 꽃을 함부로 꺾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눈으로만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 정도 쉬다보면 누군가 먼저 일어나 갈길을 재촉했다. 이제 내리막길이라 부담없이 바로 일어나 행렬에 꼈다. 잔 가지를 주워 허공에 지휘를 하며 걸었다. 그게 뭐라고 참 재미있었다. 그때였다.


“귀신이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와 동시에 일동 쉬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뒤돌아볼 새 없이 앞을 향해 뛰었다. 가다가 미끄러져 넘어졌지만 오뚝이처럼 바로 일어나 다시 달렸다. 다리가 까진 것 같았다. 살펴볼 틈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무렵에야 앞 무리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그제야 나도 밭은 숨을 토해내며 멈춰 섰다.


  뒤에서 언니들이 까르르 웃으며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속았다.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다 함께 웃음이 터졌다. 번번이 속으면서도 마냥 재미있었다. 덕분에 바로 동네 초입 길에 들어섰다. 산길은 역시 지름길이었다. 저만치 뒤로 동네 오빠들이 보였다. 왠지 승자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등하굣길이 달라지면서 산길을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어느 봄날 지인과 동네 뒷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고 헤맸다. 그러다 우연히 산딸기밭을 발견했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물병을 싸왔던 비닐 봉지가 전부였다. 우리는 봉지 가득 산딸기를 따왔다.


   집에 돌아와 산딸기청을 담갔다. 다음날 탄산수를 부어 마시니 꼬드득꼬드득 씹히는 맛이 좋았다. 갑자기 콧등이 시려왔다. 어린날의 산길은 있을까? 큰바위와 할미꽃이, 어린 내가 너무나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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