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끝까지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JMS의 정명석을 시작으로 오대양의 박순자(또는 구원파 유병언), 아가동산의 김기순, 만민중앙교회의 이재록과 그들의 악행이 소개된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등장하는 사이비 교주들의 특징은
1. 돈에 미쳤거나
2. 섹스에 미쳤거나
3. 둘 다에 미쳤다.
4. 그리고 미적 감각이 잘 봐줘도 90년대 후반에 멈춰있다. 이건 신기할 정도다.
JMS의 정명석. 이 이름을 십 년도 전에 들었다. 축구 경기에서 몇 백 점을 넣었다던가. 너무 터무니없기에 농담에서나 등장하는 사이비 교주,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시작되고 피해자의 얼굴이 보이면서, 농담이 현실이 되었다. 모자이크조차 하지 않은 피해자의 얼굴을 보며 이 사람이 했을, 그 수많은 고민과 결심이 약간이나마 짐작되어 나도 욕지기가 올라올 것 같았다.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는 이런 점에서 멘탈에 꽤나 타격을 준다. 만약 같은 내용, 같은 화면이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이 정도로 충격이 오진 않았을 텐데. 같은 지점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나왔을 때 선정성 논란이 우습기도 했다. 이 정도로 자극적이지 않으면 이 정도로 화제도 되지 않았을 테니까.
예전에는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런 종교에 빠지는 게 잘못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이 다큐에서 막연한 '사이비 종교', 또는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라는 단어는 한 명, 한 명이 살아있는(또는 살아있던)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한 명, 한 명이 결코 나보다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았던 건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비 종교는 지뢰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에 의한 강제, 심적인 어려움, 외로움, 또는 우연. 누구든, 그 어떠한 이유로든 밟지 않는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
다큐가 나온 지도 몇 달이 되었고, 나도 이 다큐를 처음 봤을 때의 열은 많이 식었다. 그래서 처음 작성할 때보다 톤 다운을 많이 했다. 그래도 누가 밟을지 모를 지뢰는 치우는 게 맞다. 못 치우면 여기 지뢰가 있다고 표시라도 하자.
2023.6.5(월) 작성
아, 방송 외적으로 MBC 제작진이 넷플릭스의 제작지원을 받아 제작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야 지상파에서 부담스러운 내용을 넷플릭스를 통해 좋은 퀄리티로 속 시원하게 풀어내는 점이 좋다만, 방송사 입장에서는 <나는 신이다>의 성공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