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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Dec 12. 2020

살고 싶지 않아 면접을 봤다 (2)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기에 너무나 사나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눈이 이렇게 번쩍 뜨인 것은 오랜만이었다. 다 긴장의 힘이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준비했다. 머리만 감으면, 샤워만 했다 하면 멍해져 씻는 시간이 길어지는 습관도 이날만은 예외였다. 푸석한 반곱슬 머리가 반들거릴 때까지 드라이를 했다. 아이라인을 몇 번이나 지웠다 다시 그렸는지 모른다. 눈가가 빨개질 때쯤에 겨우 화장과 머리를 완성하고는 시계를 봤다. 봐, 내 이럴 줄 알았지. 세 시간 일찍 일어나길 천만다행이었다.


삐걱거리며 정장에 몸을 꿰어 넣고 이제는 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종이 뭉치를 괜히 몇 번 더 펄럭였다.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이었다. 현관에 서서 운동화를 신다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얼른 가자며 나를 보는 엄마. 구두가 든 쇼핑백을 들고 그 옆에 선 아빠. 데려다만 주겠다고 했지만, 아빠까지 나서는 길이 아주 조금 더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잘하고 와. 내리는 나를 보며 말하는 엄마 아빠에게 일단은 씩 웃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1학년 공통 강의 이후로 얼굴을 본 기억이 없는, 까마득한 동기였다. 서로 얼굴도 알고 이름도 알지만 말은 섞은 적 없는 사이. 나쁠 건 없지만 좋을 것도 없고 그래서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기에는 역시 아무래도…… 꽤나 어색한 사이. 정장을 빼입은 모습을 보니 같은 면접임이 분명했다.


들어가서는 안내를 받고 대기실에 앉아 기다렸다. 신문사답게 자기네 신문을 테이블 앞에 펼쳐놓고 있었다. 호흡이나 가다듬으며 앉아있는데 함께 대기하던 두어 명이 신문을 집어 드는 것을 보았다. 대기실은 탁 트여 있었고, 근무 중인 직원들이 우리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쭈뼛거리다 주변을 따라 신문을 펼쳐 들었다. 하지만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신문 내용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검은 건 글씨고 회색빛은 종이였다. 나만 이런 건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대기실은 약간 허술했다. 함께 들어가 면접을 볼 면접자 명단을 신문들과 함께 아무렇지 않게 테이블 위에 놓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안구에 온 힘을 끌어모아 명단을 곁눈질했다. 한 번에 들어가는 인원은 다섯 명. 얼른 나와 함께 들어갈 조 사람들의 나이와 학교, 학과를 스캔했다. 흔히들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은 없었고, 나이도 과도 가지각색이었다. 다들 누가 들으면 '취업 안 되겠다'라고 말할 과를 졸업했다는 공통점만 있었을 뿐. 그리고 그 명단 사이, 동기의 이름도 보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대기 시간이 끝나고, 나는 불리는 이름을 듣고 재빨리 구두로 갈아신고는 일렬종대로 맞춰 면접실로 입장했다. 다섯 면접자에 맞춘 듯 다섯 면접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이 시작되었다. 나는 세 번째였고, 이쪽부터 묻나 저쪽부터 묻나 어느 정도 생각할 시간을 갖고 대답할 수 있는 자리였다. 공통 질문은 뻔했고, 개인 질문은 베일 듯 날카로웠다. 대놓고 묻기도 했다. 학점이 2점대인데, 휴학을 했는데, 군 면제를 받았는데, 다른 경험이 하나도 없는데, 자격증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죠?


우리가 왜 부족한지를 끊임없이 변명해야 하는 자리였다.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다들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것을 알았다. 그중에서도 동기는 유독 많은 지적을 받았다. 휴학도 했고, 학점도 낮았고, 군 면제도 받았기 때문이었음을 신랄한 질문들로 알 수 있었다. 그에 대해서 그동안은 아무것도 몰랐는데 말이다. 저는 그 대신에 취미 생활을 열심히 하고 동아리에서 밴드를 하면서……. 동기는 대답을 마치자마자 또 한 소리를 들었다. 아니,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학점이 2점대라는 건 공부를 하나도 안 했다는 뜻이에요. 과제도 안 내고, 출석도 안 하고, 그냥 등록하고 다니기만 했다는 거거든.


거의 취조와 추궁에 가까운 것들이 줄줄이 뒤를 이었고, 갈수록 면접자들의 템포는 느려졌다. '어, 아, 저, 음'과 같은 의성어들은 잦아졌고 길어졌다.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긴장이 풀리기는커녕 바짝 얼어붙고 있는 것을 공기로도 느낄 수 있었다.


내 머릿속 역시 충격으로 하얗게 물들어가면서도 겨우 이성의 끈을 붙잡고 굴러가고 있었다. 원래 이런가? 원래 이렇게까지…… 모멸감을 주는 말들을 하는 건가? 아니면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압박 면접인가? 지금껏 내가 보고 다녔던 대입 면접부터 동아리나 대외활동의 면접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것들은 모두 당연한 게 아니라 그저 순한 맛에 불과했나. 이걸 사회의 매운맛이라고 해야 하나.


선생에게 혼나는 학생도 아니고, 저렇게 하나하나 물어뜯겨야 한다니. 옆에서 사정없이 칼침을 맞는 동기가 안쓰러우면서도, 내 차례가 돌아올수록 안심 반 걱정 반이 되었다. 안심은 일단 그동안 앞 지원자들이 지적받은 상황에 내가 해당하는 점이 없다는 얍삽한 안도감이었고, 걱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부정적인 질문을 받게 될 것이 불가피할 분위기를 읽어서였다.




차례가 왔다. 면접관은 마스크 아래 얼굴을 보지 않아도 표정을 알 것만 같은 미간으로 말했다. 뭐, 학점도 괜찮고 이것저것 한 건 많은데, 실속이 없네. 기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 건 없네요? 왜 기자가 되고 싶어요? 한 걸로는 되고 싶었다고 보이지가 않는데 지원한 이유가 뭐예요? 읽는 신문은 있어요? 없죠? 쏟아지는 질문 중에 쉬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질문 자체가 무례한 경우도 있었다.


불쾌감은 불쾌감이고, 그걸 억누르고 단 하나도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게도 모두 사실이었다. 열렬히 기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노력한 것도 없었고, 읽는 신문도 없었다. 그냥 뭐라도 해야겠어서 지원했다. 자리가 괜찮아서, 회사 위치가 괜찮아서, 내가 신문방송학과를 나왔으니까 어떻게든 될까 봐, 최저시급보다 조금 더 되는…… 돈을 준다니까. 떠오르는 대로 관련 수업을 들었음을 이야기하고 전공을 최대한 끌어와 변명했지만 별 소용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건 다 하는 거잖아요. 그 과를 다니니까 들을 거 아냐? 빈정거리는 되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그런 와중에도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앞서 말한 다른 지원자들 같은 '치명적인' 단점은 그래도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몰아가는 거야. 그래도 이 중엔 내가 제일 나은 것 같은데. 스펙이 어쩌면 전부가 아님을 이제는 알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유치하게 억울할 것 같았다. 전부가 아니어도 그 정량적인 게 그렇게 중요하다며. 결국 그걸로 판단하는 게 세상이라며. 그런데도 그 틈새로 모자란 점을 찾아 열심히 파고든다.


나는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보는 신문이 없다고 답했다. 마스크 너머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오래 대답을 끈 적도, 멍청한 대답을 해버린 적도 없었다. 어떤 면접 자리에서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하이에나에게 내던져진 물소처럼 한참을 물어뜯기고 있자니 다섯 중 가장 끝에 앉은 면접관이 나섰다. 그, 너무 그렇게 하지는 마시고……. 제가 다른 질문 하나 할게요. 그 질문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흠씬 두들겨 맞고 KO로 쓰러진 상태였으니까.




영혼이 빠져나온 채로 면접장을 나와서는 안내에 따라 컴퓨터 앞에 앉았다. 20분가량의 기사 요약 테스트를 마치고 나서야 면접은 끝이 났다. 엘리베이터에 탔다. 올라올 때처럼 동기도 함께였다. 쟤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아니, 우리 모두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그 생각을 깨뜨리며 건너건너 옆에 앉았던 면접자가 말을 걸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그녀는 꽤 해맑았다. 부족한 게 많았던 것 같다는 내 대답에 말했다. 저는 더 그랬어요. 어쩔 수 없죠. 그나저나 대답 너무 잘하시던데요? 면접 처음 보신 거예요? 어머, 저는 엄청 많이 보신 줄 알았어요. 너무 멋지다. 고맙다며 웃었지만 속이 쓰렸다.


짧은 시간 친화력 좋게 내게 쉼 없이 말을 걸어주던 면접자를 먼저 보내고 가장 천천히 내려 두어 걸음 내딛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나 아직 구두 신고 있구나. 이걸 신고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정신으로 여기까지 내려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운동화를 갈아신고 정장 자켓 대신 후드집업을 목 끝까지 올려 입었다. 엘리베이터 옆에 엉거주춤 서서 주섬주섬 갈아입는 나를 1층을 지나다니는 정장 입은 사람들과 입구 쪽의 경비가 한 번씩 쳐다봤다.




건물 밖을 나오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부슬부슬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펼치고 정류장까지 걸어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엄마. 그냥. 그냥 했어. 잘한지는 모르겠는데. 할 말은 많은데……. 아직 여기 근처라. 집에 가서 얘기할게. 응, 끊어.


짧게 끊었다. 면접을 망쳤다고, 이미 떨어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모르는 일이니 회사 근처에서 회사 욕을 하지는 말아야지 싶었다. 이게 슬픈 일인지 웃긴 일인지. 울적한 기분으로 버스에 올라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입구 쪽 맨 앞자리에 앉았다. 투둑투둑 창문을 두들기는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떤 걸 잘할 수 있는지,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가진 역량이나 앞으로의 의지에 대해 물어는 줄 줄 알았다. 어쩌면 당연하고 관용적인 질문이라고도 생각했다. 그저 과거에 해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만 혼이 날 줄은 몰랐다. A4 용지 가득 준비하고 예상했던 질문들은 거의 없었고 그저 뭘 했느냐는 타박뿐이었다. 그러게요. 제가 뭘 했을까요. 저는 뭘 하고 살았을까요.


나는 앞으로 어딜 가도 저 이야기를 들어야겠지. 뭐 하나만 들입다 판 적이 없는, 이것저것 조금씩 번진 애매한 이력으로 점철된 삶. 더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뭘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삶. 나조차도 나에 대해 확신이 없는데, 정량적인 것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잘나고 확실한 걸 누구보다 원할 회사라는 이익집단 어딘가에 내가 속할 수는 있는 걸까.


현관을 열고 들어서 그때 느낀 해방감을 기억한다. 어느새 비가 그쳐 볕이 조금 들던 베란다. 동생과 아빠는 잠을 자고, 비스듬히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 나를 맞던 엄마. 내게 익숙한, 나의 풍경.


도착하자마자 면접이 아주 개떡 같았다고 신랄하게 욕을 해야지, 하던 마음은 그 풍경에 녹아내리고 그저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이따 얘기하자며 옷을 갈아입고, 씻고 침대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눈물샘은 자동으로 때에 맞춰 열렸다. 눈물이 귓구멍으로 들어가도록 정자세로 누워 줄줄 울고 있자니 멍하니 누워 우는 일이 내 적성에 가장 맞는 일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한 주를 넘기고 월요일 오후, 문자를 받았다.


귀하의 합격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맛보는 '정식' 실패는 역시나 뒷맛이 썼다. 마음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통보받는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전해주기까지도 마음이 무거웠음은 물론이다.


살고 싶지 않아.

면접을 봤다.


나의 쓸모는 어디에 있을까.

온 세상이 자꾸만 나를 쓸모 없다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나를 쉽게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기에 너무나 사나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끊임없이 가치를 증명해야만 나 자신을 증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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