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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Mar 17. 2021

살고 싶지 않아 살 곳을 구했다 (1)

청춘의 이면에는 적어도 내게는 뼈아픈 진실들이 곳곳에 숨어있음을.

면접 합격과 마음의 결단 그 이후, 광주를 떠나 서울에 자리 잡고 첫 출근을 하기까지 딱 10일이 남아있었다. 정식으로 집을 알아보고, 느긋하고 꼼꼼하게 준비할 시간이 내게는 없었다는 말이다. 거기다 약 두 달의 서울살이를 제외하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태어나 처음인 내게는 일주일 조금 넘는 그 시간이 더욱 촉박하게 느껴졌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잘 곳, 그러니까 살 곳이었다.


과거 두 달을 지냈던 셰어하우스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그때도 두 달 동안 잠시 공부를 위해 머물 공간이 필요했고, 그렇다고 고시원은 무서워 선택한 곳이었다. 이번에도 일단은 거기서 지내고, 회사를 뛰쳐나오거나 하는 불상사 없이 몇 달 자리를 잡으면 그때 제대로 된 집을 얻어야지 하는 심산이었다.




처음에는 대규모 셰어하우스로 가고 싶었다. 이전에 지냈던 셰어하우스는 일반 투룸에서 전세로 사는 주인과 방을 나누어 사는, 사실상 동거에 가까운 단순한 구조였기 때문에 따로 관리자가 있고, 체계적으로 관리받으며 지내는 셰어하우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셰어하우스를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 체인점이 주르륵 뜨는, 삶의 여러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 듯한 청춘의 상징. 나의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홈페이지 메인에는 푸릇한 나무들이 가득 심긴 정원에서 노트북을 펼쳐두고 커피를 홀짝이며 여유롭게 일하거나, 함께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 그럴듯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청춘의 이면에는 적어도 내게는 뼈아픈 진실들이 곳곳에 숨어있음을.


24시간 깔끔하고 새것 같은, 인테리어만으로 인스타그램 게시물 한자리를 차지할 법한 비주얼의 방들은 4인실, 6인실, 8인실……. 10인실인 경우도 허다했고, 각자에게 주어진 공간은 캡슐 호텔 수준이었다. 눕고 나면 발치에 서너 뼘 정도의 공간만이 남는, 여행 중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에서 이만 원을 주고 하루를 묵으면서도 편치 않았던 그런 크기 말이다.


1인실도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대부분이 2평 남짓이었다. 예쁜 방에는 감성이 있었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감성밖에 없기도 했다. 침대와 노트북 하나를 올려둘 만한 크기의 책상, 얇은 의자, 벽에 매달린 작은 행거. 홈페이지에 걸린 방 사진에는 책상 위에 화분과 펜이, 행거에는 원피스 한 벌과 모자 하나가 걸려있었다.


그럼 나머지 옷은? 나머지 짐은? 아니, 당최 저기서 어떻게 '숙박'이 아니라 '거주'를 한단 말이야?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로 세상을 살아가는 간디 같은 이들을 위한 방인 걸까. 맥시멀리스트에게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방의 크기와 구조였다.


그렇다면 가격은? 1인실이 보증금 천만 원에 60만 원. 4인실은 40만 원대, 10인 실조차도 30만 원대. 나는 조용히 노트북 화면을 접으며 내 마음도 곱게 접었다.


물론 이러한 형태의 셰어하우스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곳을 진심으로 아끼고 가꾸며 운영하고, 누군가는 그곳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인적 자원을 얻을 수 있고 보다 많은 이들과 새로이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구축되는 공간이라는 이점은 분명히 있겠지만, 어차피 혼자 노는 걸 제일 좋아하는 극강의 인프피(INFP) 집순이에게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니, 독이 될 확률이 높았다. 무엇보다 인스타 감성과 몇십만 원을 맞바꾸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로망'에 가깝던, 하지만 파고 보니 그만한 대가가 따르던 으리으리 역세권 풀옵션 셰어하우스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셰어하우스 카페를 열심히 뒤졌다. 밤낮으로 눈이 빨개지게 카페를 들락거린 결과 회사로부터 거리도 가깝고, 상태도 괜찮고, 비용도 저렴한 곳을 몇 군데 찾았다.


사실 이 단계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시글을 보자마자 연락을 해도 정말 이런 조건이 있단 말이야? 싶은 수준의 방들은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당일 방을 보러 갔다는 사람의 차지가 되곤 했다.


당일 방을 보고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려 보증금이며 월세 입금까지 다이렉트로 성사하는 그 사람들의 여유와 대범함이 부러웠다. 서울로부터 장장 4시간이 걸리는 지방에 살며 일주일 뒤 주말에나 방문할 수 있다는 나의 약속은 먼저 방문한 이들에 의해 언제 바스러질지 모르는 나약한 약속이었다.


신기루 같고 유니콘 같은 방들을 눈 깜짝할 사이 떠나보내고, 아쉬운 대로 여유가 되는 방들 중에서 스케줄을 조정했다. 여유가 되는 방들이란 대략 거리가 괜찮으면 상태가 불량이거나, 상태가 좋으면 강남 한복판다운 값을 하거나, 둘 다 좋으면 통근의 노예가 되어 새벽 대여섯 시 기상은 떼놓은 당상인 정도를 말했다.


조건들이 얼추 충족되면서도 일주일 뒤에도 보러갈 수 있을 만큼 방이 남아 나를 기다려주고, 보고 나서 일주일 내에 바로 입주가 가능한 곳은 더더욱 드물었다. 이쯤 되면 그저 운명 같은 방을 만나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그나마 찾아낸 몇 군데도 말이 좋아 셋 다 충족하는 것이지, 사실상 구멍이 숭숭 뚫린 조건이었다. 뭐, 세상 모든 조건은 상대적인 거니까. 그래도 충분히 괜찮을 거라고, 설마 어디 하나 괜찮은 데 없겠냐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동시에 잡아둔 약속들이 파투 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올라갈 날짜에 맞춰 일정을 짰다.




입사 5일 전,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어쩌면 첫 출근날만큼이나 비장한 각오였다.


캐리어 하나 백팩 하나를 챙겨 서울로 올라갔다. 동생도 함께였다. 뭘 해도 내게는 부족한 요령이 있고 센스가 좋은 동생이 허점투성이인 나의 시야를 커버해줄 수 있으리란 판단에서였다. 동생은 당일 열심히 셰어하우스를 돌아보고, 대신 다음날 서울 구경을 한다는 조건으로 흔쾌히 나서 주었다.


살고 싶지 않아.

살 곳을 구했다.


이른 아침의 상경. 총 네 군데를 돌아보기로 되어 있었고, 하루는 아직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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