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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an 31. 2021

살고 싶지 않아 서울로 가기로 했다

결과가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나의 쓸모는 어디쯤에 있을까.

어딘가에 있기는 할까.


그즈음에는 이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모욕적인 면접과 그에 딸린 불합격을 뒤로하고 마음을 추스른 뒤, 끊임없이 애를 썼지만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쓰디쓰게만 느껴졌던 면접의 실패조차 나름 달달한 열매 축에 속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뒤로는 변변찮은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 그 시간들은 무수한 몸부림 같았다. 합격, 단 두 글자를 받기 위한 몸부림.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짓을 두세 달쯤 물리도록 반복하고 나자 언제부턴가 마음에 휑하니 구멍이 뚫린 듯했다. 바람구멍 사이로 넋이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는 느낌이랄까. 우울감에 허덕이다 겨우내 붙잡았던 마음가지가 또다시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슬슬 벽을 느끼고 하나둘 손에서 내려놓기 시작했다. 쉬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아르바이트에만 몰두했다. 사실 몰두했다기보다, 할 게 그것밖에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거라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중,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익숙한 구인구직 사이트의 알림이었다. 누군가 내 이력서를 열람했다고 했다. 클릭해 들어가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어제도, 그제도, 그 전날에도 본 회사의 이름이었다. 아니, 이 회사는 내 이력서만 몇 번을 들여다보는 거야. 이럴 거면 아예 캡처라도 해두고 보지. 닳겠다, 닳겠어.


그렇게 웃고 넘기려던 알림은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이어졌다. 일주일을 내리, 하루에도 몇 번씩 뜨는 푸시 알림에 이제 어이가 없어질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보통 이력서를 열람하고 나면 적어도, 정말 적어도 그 주 안에는 연락이 오던데 이 회사는 내 이력서만 삼천 번을 들여다보고도 연락 한 줄 없었다.


참으로 기이한 회사일세.


웃어버리고는 계속 빵을 팔았다. 틈틈이 일기를 쓰면서.

덕분에 그날의 일기장에도 한 줄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뭘까? 웃기다.




우스운 평일과 주말이 지나고, 다시 빵을 팔러 갈 평일이 밝았다. 네 시까지 출근해야 했기에 십오 분 전쯤 매장에 도착했다. 옷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쓰고 나니 오 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평소에는 항상 오 분 전에 내려가 사장님과 교대를 하고 일을 시작하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이 날따라 네 시 정각에 맞춰 내려가야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쯤이야 뭐. 근무 시간은 원래 네 시부터니까. 자기합리화를 하며 한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반사적으로 위로 뜨는 숫자를 봤다. 16:00, 네 시 정각이었다. 받을까, 말까. 잠깐 고민하다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어딘데요.


아, 네. 건조하게 대답했다. 이런 전화는 가끔 받았다. 반이 텔레마케터, 나머지 반은 학력도 능력도 필요 없고 오직 실적만 본다는 영업직 제의 정도. 그런데 회사 이름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어? 그 회사였다. 내 이력서를 어쩌면 나보다 잘 외울 수도 있을 것 같은 웃긴 회사.


목요일에 면접을 보러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오늘은 화요일이었다. 그리고 목요일에는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그다지 뜸 들이지 않고 가능하다고 대답하자 약간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오후 중 시간대를 제안하기에 개중 가장 늦은 시각을 골랐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네. 심드렁하게 전화를 끊고 바로 온 문자를 확인하는데, 아뿔싸. 서울이다.


내게 오는 대부분의 연락은 자리도 자리였지만 지리도 지리였다. 대부분이 광주였다는 말이다. 이력서를 넣었을 때 면접까지 갔던 몇 군데의 회사들 역시 거의 광주에 있었다. 최악의 면접으로 기억되는 신문사 면접 역시도 광주였다. 생판 처음 만나는, 강남 한복판에 있는 회사를 확인하자 거대한 고민에 휩싸였다.


다행이라면 다행히도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라지만, 굳이 서울까지 가야 하나? 그것도 이틀 뒤에? 오르내리는 시간이 얼마고 돈이 얼만데, 괜한 고생만 하는 건 아닐까? 이미 숱한 패배를 겪고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내게는 이번 선택지 역시 '도전'이라기보다는 헛걸음이 될까 두려운 '고민거리'로 전락해있었다.




가장 먼저 아빠에게 소식을 전했다. 이러이러한 회사인 것 같은데, 이러이러하게 연락이 왔다. 무려 서울인데, 또 고작 이틀 뒤다. 갈까? 라고. 아빠는 가만히 듣더니, 일단 물었다. 네가 뜻이 있어? 김이 좀 샜다. 나 참. 그러니까 그걸 모르겠어서 아빠에게 묻는 건데 말이다. 아빠에 이어 엄마, 동생, 가족들과 대화가 이어질수록 나도 나를 모르겠다고 느꼈다. 가고 싶은 건지, 가기 싫은 건지. 솔직히 말하면 회사도 못 미더웠고 나도 못 미더웠다.


부모님은 되도록 가길 원하셨다. 뭐든 다 경험이라고. 그 말에는 나도 동의했다. 만약 맥없이 또 떨어진대도, 면접 경험이란 게 하나라도 더 쌓이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지 않겠어? 하지만 그보다도 앞선 감정은 기약 없는 기다림과 확신 없는 시도를, 또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한 갈등이었다.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주어진 시간은 이틀뿐이었고, 고민할 시간은 짧았다.


결국 가기로 했다. 일단 가보는 거지, 뭐. 못 먹어도 고다. 잠시 잊고 있었던 내 이력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낯설고 낯뜨거웠지만 다시 처음처럼 또 읽고 외웠다. 다만 이전만큼의 긴장도 기대도 없었기에 준비도 옷차림도 그만큼 가벼워졌다. 편한 슬랙스에 가벼운 자켓을 걸치고 서울길에 올랐다.




면접에 대해서는 짧게 이야기하겠다. 왜냐하면, 어찌 됐든 현 직장이니까. 나쁜 말은 물론 좋은 말일지라도 길고 자세해서 좋을 건 없다. 다만 '우리는 너를 평가하려고 여기 앉아있다'가 아닌, '우리 서로 궁금한 걸 묻고 알아가 보자'는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 면접이었다. 처음에는 여느 면접들처럼 잔뜩 긴장하고 굳어 한껏 외워온 말들만 테이프처럼 내뱉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직되어 있던 표정도, 말투도 자연스러워졌다. 언뜻 몇 번 해보았던 좌담회 아르바이트나, 상담 같기도 했다. 낯설지만 그 낯섦이 나쁘지 않은 자리였다.


면접 말미에는 궁금한 점이 있냐고 물었고, 분위기를 타고 솔직한 질문을 몇 가지 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솔직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좋은 조건도, 별로인 조건도 있었지만 좋은 조건을 자랑하려 들지 않았고 별로인 조건을 애써 포장하지도 않았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면접을 마치고 면접비를 주며 멀리까지 왔는데 바로 내려가려면 힘들겠다는 말에,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속으로 문득 생각했다.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럼 좀 놀다가 가야겠다.


면접 이후 풀렸어야 할 긴장은 면접 중에 이미 풀려 있었다. 여태 이런 적이 있었던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건물을 나서며 영화관 앱을 켰다. 영화나 좀 보고 갈까. 나는 그날 영화를 연달아 두 개나 보고 갔다. 심지어 하나는 무대인사였고, 하나는 GV(관객과의 대화)였다. 배우와 사진도 찍고, 사인까지 받고 포스터를 소중히 품에 안은 채 밖을 나오자 어느새 까마득히 어둑한 하늘에는 별이 하나 없었다.


결과가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월요일에 연락을 받았다. 그날도 영화를 봤다. 심지어 아주아주 시끄러운 영화를 보던 중이었다. 웅장한 사운드를 뚫고 요란하게 울리는 진동 소리에 서둘러 영화관을 빠져나갔다. 평소였다면 비행기 모드를 설정했겠지만 이날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이번 역시 모르는 번호가 떴지만 수신 거부를 하지도 않았다.


전화를 받으니 합격했다고, 축하한다며 출근 일자를 알려주었다. 면접 때 이야기가 나왔던, 지방에서 상경해야 하는 내 상황까지 고려해 며칠 더 배려 받은 출근 일자였다. 전화를 끊고 다시 영화관에 들어가자 함께 영화를 보던 친구가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는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영화는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고, 사실 이후로 십 분 정도의 남은 분량을 무슨 정신으로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토록 긴장하고, 온 정신을 쏟고, 간절하던 기회들은 번번이 나를 비껴갔는데 덤덤한 마음으로 가볍게 마주한 기회가 내게 잡혀주었고 나를 잡아주었다. 스쳐 가지 않고 머물러 주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조급해할 때는 그렇게나 멀리 달아나더니, 느긋하게 굴자 손에 잡히도록 다가오는 것. 운명의 장난 같기도 했다.


다소 오만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선택권은 어쨌든 내 쪽으로 넘어와 있었다. 나는 함께 영화를 본 친구는 물론 가족들과 깊고 오랜 대화 끝에 결정했다.


살고 싶지 않아.

서울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일단은 말이다.


아직도 정말, 정말 많은 과제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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