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혀보고 나서 돌아가도 하나도 늦지 않다.
서울에 도착한 나와 동생의 셰어하우스 투어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집은 회사에서 도보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이 집이 알아본 집 중 가장 멀었다. 아무리 못해도 50-60은 잡아야 할 무자비한 서울 셰어하우스 월세에 교통비까지 얹고 싶지 않아 회사 근처로만 알아본 결과였다.
거주자는 집을 보러 가기 직전까지도 주소를 알려주지 않고 근처 편의점을 알려주었다. 생각해 보면 보러 갈 집 중 유일하게 사진도 공개하지 않았다. 철저한 보안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에는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스몰토크를 하며 도착한 집은 대로변에 있어 안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작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현관문을 연 순간, 나와 동생은 동시에 서로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집이 아주 작았다. 솔직하게, 사진을 미리 봤더라면 사이즈만 보고 보러 오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공용 공간에는 거실이나 부엌이랄 게 없는, 방과 화장실 사이의 통로에 일자로 뻗은 좁은 싱크대와 현관 바로 옆에 있는 1인 식탁이 있었다. 사람이 넷인데 냉장고는 내 가슴께까지 왔다. 방은 두 개였지만 한 방은 본가에 있는 내 방만했고, 다른 한 방은 그보다도 작았다. 그 방에 각각 두 사람씩이 산다고 했다.
내 자리가 될 곳은 2층 침대가 있는 방의 2층이었다. 그 방에는 옷장이나 행거 대신 벽에 붙여 쓰는 꼭꼬핀 옷걸이 몇 개가, 화장대나 책상 대신 침대 바로 옆에 작은 협탁 비슷한 것이 있었다. 코트류는 무너질 듯한 옷걸이에 여러 벌이 매달려있었고 다른 옷들은 개어진 채 침대 발치나 방문 뒤에 어지러이 쌓여 있었다. 협탁에는 두 명분의 화장품일 것들이 거울 하나 올리기 어려울 만큼 미어터지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방에 바닥이 보이는 공간은 딱 2층 침대 사다리 밑의 발 디딜 틈과 쪼그려 앉아 돌아가며 화장을 했을 협탁 앞 엉덩이 두 쪽만큼이 전부였다.
평수를 가늠하건대 정말 잘해야 10평도 채 되지 않았을, 어떻게 화장실 하나에 방 두 개를 뽑아냈는지 경이로운 수준의 집이었다. 방을 구경하는 내내 짐짓 태연한 척했지만 멘탈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런 방의 2층 침대 한 칸도 30만 원이구나. 서울의 물가가 가히 살인적이구나. 좌절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져 그냥 입사를 무르고 집으로 도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에는 너무 열악하게 느껴졌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사람들이 좋았다. 내가 감히 열악하다고 생각하기 미안할 만큼 다들 거의 오랜 친구, 자매들처럼 너무 잘 생활하고 있었다. 실제로 한 번 들어오면 몇 년씩 지내는 경우가 많고, 방학이며 휴가 때는 함께 여행을 다닌 적도 많다고 했다. 그런 사이이다 보니 집의 관리자이자 가장 연장자인 분이 쌀과 물, 휴지, 주방세제, 세탁세제 등을 본인 돈으로 사서 구비해두기 때문에 부가적인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그때는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싶었지만, 지금은 안다. 정기적으로 소모되는 티끌들이 모여 어떤 태산을 이루는지. 그것도 4인분을 감당한다면, 말도 안 되게 멋진 분이다.)
당장 서울에 올라오면 친구 하나 없이 외로이 지내야 하고, 또 한 푼이 아쉬울 상황이라 아주 잠깐 혹할 부분이 있었지만 허락되는 지상의 면적이 욕실 발 매트만 한 방에 둘이서 살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집안에 밥 한 끼 편히 먹을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자꾸 머리에 맴돌았다. 결국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다며 황급히 집을 빠져나왔다.
두 번째 집은 먹자골목 쪽에 있었다. 집 바로 앞까지도 아주 시끌벅적했고 고기 냄새가 진동했으며 술에 취한 사람들이 고래고래 욕을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4층으로 주소를 받은 집의 1층에는 횟집이 있었다. 음식점 있는 건물은 별로라고 했는데. 걱정이 앞섰다.
이제 기대는 온데간데없고 걱정 반 괜찮을 거란 자기 암시 반을 안고 계단을 오르는데 뒤에서 배달원이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다른 층으로 갈 줄 알았던 배달원은 4층까지 우리와 함께 올라왔다. 우리는 슬쩍 길을 비켜주었다. 문을 두드리자 편한 차림의 긴 머리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안 시켰는데요.
네?
아무것도 안 시켰다고요.
여자는 굉장히 냉소적인 표정과 목소리를 하고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당황한 배달원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뒤에서 머리를 묶은 여자가 나타나 불쑥 끼어들었다. 시켰는데요. 제 거예요. 묶은 머리의 여자 역시 표정에는 생기가 별로 없었다.
비켜요. 비키라고요. 이어 묶은 머리 여자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나와 동생, 그리고 아마도 배달원까지 우리 셋은 잠시 얼어붙었다. 누가 봐도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아 보였다. 짜증 섞인 말투로 긴 머리 여자를 밀어낸 묶은 머리 여자는 봉투를 받아 들고 들어가 버렸고, 배달원은 계단을 내려갔다. 뭐지? 나와 동생은 덩그러니 문 앞에 잠시 서 있다가, 긴 머리 여자가 말을 걸자 그제야 대답할 정신이 들었다. 방 보러 오셨어요?
1층에는 1인실 4개, 2층에는 2인실 1개가 있었다. 내가 쓸 방은 가장 큰 방이었다. 안내를 따라 구경한 방은 사진과 거의 흡사했지만 사진에서보다 훨씬 지저분했다. 어떻게 하면 다른 곳도 아니고 책장에 찌든 때가 낄 수 있는 건지 의문스러웠고, 침대 매트리스에는 알 수 없는 노란 얼룩이 물들어 있었다. 음, 정말 미치겠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부엌이나 화장실도 꼼꼼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긴 머리 여자는 시종일관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카페를 통해 연락한 집주인 여자는 굉장히 친절했는데 '자리를 비우게 되어 안내를 부탁받은' 세입자라서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었다.
그때 부엌 한편에서 아까 받은 음식을 먹고 있던 묶은 머리 여자가 말없이 일어났다. 긴 머리 여자를 힐끗 한 번 보고는 지나쳐 오더니 자기가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긴 머리 여자는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 묶은 머리 여자를 노려보다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역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와 동생은 눈만 끔뻑이며 서로 눈치를 봤다.
묶은 머리 여자도 썩 친절하거나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설명 중에 알게 된 놀라운 것은, 저 두 여자가 2인실을 함께 쓴다는 것이었다. 이런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서 저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니. 저 세입자들과 별개로, 집에서 묘하게 냉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집 같지 않고 사무실이나 스튜디오 같은 느낌. 동생과 나는 집을 나서자마자 서로 한 마디씩 했다. 분위기 봤어? 뭐야? 어떡하지?
한낮에도 불을 죄 꺼놓고 어둠 속에서 치킨을 씹던 묶은 머리 여자와 착 내려앉은 눈으로 그 여자의 뒤통수를 쏘아보던 긴 머리 여자가 다른 의미로 눈에 밟혀 이 집도 마음을 접었다.
이제 두 집을 봤을 뿐인데 온몸의 기력을 다 쓴 것 같았다. 와중에 시간이 애매해 동생과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세 번째로 방문하기로 한 집이 마침 두 번째 집의 바로 맞은편 골목이어서, 그 집을 코앞에 두고 바로 옆 돈가스집으로 갔다. 돈가스를 시키고 가만 앉아 있는데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다른 집도 다 이러면 어떡하지. 내가 너무 까다로운 걸까. 그렇지만 본가에 있는 내 방만큼의 공간도 없이 지내고 싶지는 않은데. 그냥 서로 각자 제 할 일 하며 집에서는 릴렉스하고 살고 싶은 건데. 한숨을 푹푹 내쉬며 고개를 떨구고 있자니 앞에 앉은 동생이 말했다.
아직 남았잖아. 더 괜찮은 데 있을 거야. 먹고 생각하자.
나 그냥 가지 말까? 지금이라도 무르면 되잖아. 짐 가지고 그대로 내려가면 되지.
막막한 마음에 되는대로 내뱉었다. 사실 정말로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두려운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렇게 갑자기, 불쑥 가족의 곁을 떠날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아주 갑작스럽고도 빠르게 착착 진행되는 지금의 상황을 시곗바늘을 붙들고 늘어져서라도 막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종의 어리광이었다.
사실 그때라도 얼마든지 돌이킬 수는 있었다.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동생은 진심이냐는 듯 잠시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그냥 그랬다.
뭐……. 진짜 그러려면 그러든가. 어쩔 수 없잖아.
응? 진짜로?
그래. 언니가 진짜 죽어도 싫으면, 죽어도 아니면 아닌 거지.
김이 푸스스 샜다. 남의 일이라고 지금 아무렇게나 말하는 거야, 뭐야. 눈을 흘겼지만 동생의 눈빛에 나를 놀리려는 의도나 무심한 태도는 담겨있지 않았다. 그걸 느끼자 왠지 마음이 약간 놓이는 것 같았다.
그래, 만약 정말 죽어도 싫고 죽어도 아니라면, 내게는 냅다 뛰쳐나와 돌아갈 든든한 홈베이스가 있다. 울고 짜며 패배자처럼 터덜터덜 돌아간대도 혀를 끌끌 찰지언정 나를 받아주고 안아줄 그런 내 가족이 있다. 부딪혀보고 나서 돌아가도 하나도 늦지 않다. 그러니까 일단 부딪혀야지.
돈가스가 나왔다. 포크부터 신나게 부딪혀야겠네.
살고 싶지 않아.
살 곳을 구했다.
아직 나에게는 절반의 집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