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판별법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수상한 것이 2016년이다. 우리나라 작가가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그때도 한강 작가의 책이 인기를 끌었다. 내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은 것은 작년(2023년) 하반기 아니면 올해 초 정도가 된다. 이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도서관 책은 나달나달했지만, 한강 작가의 문장들은 날카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한강 작가의 책은 곧 품절이 됐고, 도서관의 예약도 모두 마감이 되었을 것이다. 맨부커상 수상의 번잡함을 피해 몇 년 뒤에 읽어둔 것이 내가 좋아하던 식당이 유명 맛집 리스트에 오른 것처럼 왠지 기뻤다.
그런 기쁨을 다시 누리기 위해 다음 목표를 탐색하던 중에 예전에 예약이 잔뜩 걸려 빌리지 못했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외국에서 수상을 한 이력이 있고 2022년에는 맨부커상 후보에도 오른 작품이다. 내가 기억하는 제목은 ‘보라토끼’. 그런데 아무리 도서관 사이트에서 검색해도 잘 찾아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을 씨름하던 중 이유를 찾아냈다. 제목에 대한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다. 올바른 서명은 ‘저주토끼’였다. 작가는 정보라 작가. 풋, 한 기억력 하던 나였는데 나이가 들며 기억력이 파편 났음을 깨달았다. 중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도서관에서 차를 끌고 집으로 와서 주차를 하고 내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소리가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끄응”. 아, 할아버지들이 내던 그 소리. 트렁크에서 물건을 꺼내려고 허리를 굽혔다가 일어나는데 이상하게도 또 그 소리가 나와버렸다. “끄응” 의도한 적도 없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에서 빠져나오는 이 소리. 이 소리는 한국 중년 남자 눈사람씨가 앉았다 일어나거나 몸을 굽혔다 펼 때 나오는 의도치 않은 소리입니다… 쩝.
그런데 몇 시간 후에 아내도 차에서 내리는데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 말았다. ‘음. 나보다 어린 친구인데 이제 어쩔 수 없는 중년이군.’ 하물며 나는, 완벽한 중년이란 것을 깨달았다. 의도치 않은 소리가 나온다면 피하지 말고 인정하자. 빼박 중년임을. 이제 연식이 좀 된 몸의 이곳저곳이 힘쓰기 위해 내는 피치 못할 소리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 “아이고야”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하루하루 더 보람차고 값지게, 건강을 생각하면서 지내야 한다.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내일은 출근도 해야지. 일어나 침대로 가자. “끄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