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용 부동산 대출 관리
한 유명 연예인의 투자 관련 기사가 논란이 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연예인은 몇십억 원짜리 건물을 매수했는데, 매매 대금의 70% 이상을 대출로 충당했습니다. 기사에 딸린 댓글들은 빚투를 비난하는 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과도한 대출은 당연히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을 욕하기 전에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한번 뱉은 말과 글은 주워 담기 힘든 경우가 많으니까요.
상가를 매입하거나 건물주가 되는 것은 임대 ‘사업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업의 리스크관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흑자부도’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우량 기업이 흑자임에도 부도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판매대금을 현금으로 받지 못할 때입니다. 아무리 제품이 잘 팔려도 구매상들이 물건만 받아 가고 판매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으면 판매기업은 자금이 마르게 되고, 부품사 등 다른 업체들에게 결제를 하지 못해서 부도를 내게 되지요. 이런 우량 기업을 살리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유동성 공급입니다. 은행이나 정부에서 이 기업의 역량을 믿고 자금을 대출해 주는 것이지요. 그럼 이 기업은 받은 대출금으로 급한 대금을 지급해서 우선 부도를 막고, 이후에 들어오는 판매대금을 잘 회수하면 회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생을 한번 겪고 나면, 기업 사장님들은 유동성 관리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몇 달은 버틸 충분한 현금을 미리 확보하거나 당장은 필요하지 않아도 미리 대출을 받아 놓는 것이지요.
상가나 건물의 임대사업자 역시 유동성 관리가 중요합니다.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임대료만으로도 대출이자 상환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기나 나빠져서 임차인들이 임대료를 내지 못하면 당장 이자를 내기가 어려워집니다. 임대보증금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회수할 수 있는 돈이지만, 당장은 연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흑자부도의 경우와 같이 임대사업자도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임대사업자에게 선뜻 유동성을 지원해 줄 정부나 은행은 없습니다. 따라서 미리 충분한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조건이 동일한 20억 원짜리 건물을 매입한 두 사람, 나안전과 나몰라가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8억 원의 여유자금이 있고 임대수익률은 3%, 대출 이자율은 4%입니다. 나안전은 14억 원(건물 가액의 70%)을 대출받아 건물을 샀고, 나몰라는 12억 원(건물 가액의 60%)을 대출받아 건물을 샀습니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건물을 매수하고 난 뒤에 나안전의 연간 수익은 4백만 원인데 반해, 나몰라의 연간 수익은 12백만 원이 됩니다. 대출을 적게 받은 만큼 나몰라의 수익이 더 클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건물 매수 후 갑자기 극심한 불경기가 찾아왔습니다. 임차인들의 절반이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안전은 연간 26백만 원을 손해 보게 되고 나몰라는 연간 18백만 원을 손해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은 누구일까요? 나몰라입니다. 나몰라는 여유자금이 없기 때문에 당장 대출이자를 갚을 돈이 없고 은행에서 연체 통보가 날라옵니다. 몇 달 연체가 되고 대출 만기가 돌아오자 은행에서 일부라도 상환하라고 더 큰 압박이 돌아옵니다. 반면, 나안전은 여유자금이 1.74억 원이나 되기 때문에 이 상황을 여유롭게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대출은 금액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환능력입니다. 그래서 정부도 대출 규제를 할 때 LTV와 DSR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지요. 5억 원을 대출받은 연봉 5천만 원 직장인과 20억 원을 대출받은 연수입 10억 원의 연예인 중 누구의 대출이 더 위험할까요? 처음에 언급한 연예인의 빚투 사례도 대출금액만으로 비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입니다. 대출받은 사람이 얼마만큼의 여유 자금을 지니고 있는지, 그 사람의 소득은 얼마인지까지 파악해야 대출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택을 구매할 때는 필요 없지만, 상가나 건물을 매수하려면 사업자등록이 필수입니다. 사업자로 등록한다는 것은 사업을 한다는 말이고 사장님이 된다는 뜻입니다. 주택담보 대출의 위험관리 핵심은 현재 소득으로 대출 원리금을 감당할 수 있느냐입니다. 하지만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사업소득(임대료)으로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지가 관건입니다. 사업체를 유지하려면 불경기나 공실과 같은 위기가 닥쳐도 견딜 수 있는 안전망을 단단히 마련해야 하고, 그 안전망은 여유자금과 본업 등의 기타 소득입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건물이나 상가를 매수할 때)는 현재가 아니라 위기를 가정한 시나리오에서 필요한 대출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미리 파악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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