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혼은 정말 치열했다.
남들은 신혼에 알콩달콩 깨 볶느라 바쁘다던데, 우리는 거의 신혼 극 초기부터, 삐거덕거리고 있었다.
(알콩달콩? 깨 볶는다고? 그게 진짜 신혼에 가능한 일이긴 합니까?)
아니, 연애할 땐 그렇게 다정하고 마음 넓고 젠틀하던 사람이 결혼하자마자 이렇게 속 좁고, 잘 삐치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을 줄이야!!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는 걸 많이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다. 결혼하는 순간, 연애 때의 그 사람은 어디 갔는지 없더라.
덕분에 정말 많이 싸웠다. 나도 마냥 참는 성격이 아니고 남편은 고집이 대단한 사람이라 정말, 저어어어엉말 많이 싸웠다.
대략 결혼하고 4년 차까지 싸운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살면서 ‘절망’이란 단어가 피부에 와닿은 적도 그때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절대 빈말은 안 하는 내 입에서 이혼 얘기가 나왔을까…….)
그랬던 우리가…… 벌써 결혼 11년 차가 되었다. 11년 차…… 무려 함께 산 지 두 자릿수가 넘어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연애 때야 그냥 헤어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결혼은 아니었다. ‘그냥’ 헤어지는 게 없었다.
‘이혼’이라는 절차를 밟아야 하고,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 보란 듯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내 자존심도 무참히 박살 나야 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는 자괴감과 아무리 흠이 아니라고 해도 ‘이혼녀’라는 꼬리표까지 평생 나를 괴롭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서웠다. 그래서 견딜 수 있는 만큼, 아니 그 이상을 넘어서도 죽지 않을 정도면 견뎌버렸다.
그때 나의 인내심 한계가 이렇게까지 넓었던가 싶어 매 순간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우리는 나름의 정도를 지켰던 거 같다. 서로 상스러운 욕을 내뱉거나,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폭력을 쓰는 등의 선을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화해를 한 뒤에는 덧나지 않고 비교적 흔적 없이, 서로 잘 붙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원래 아니다 싶으면 칼같이 돌아서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 당시 남편이 정말 ‘아니다’라고 판단됐다면, 그 누가 뭐래도 나는 이혼을 강행했을 거다. (손절에는 누구보다 자신있는 사람 나야 나.)
그런데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이고 고민했던 이유는, 뭔가 그 상황이 개선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아프고, 혼란스러운 그 와중에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는 계속, 그 너머가 보였다.
이 시기만 잘 넘기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거란, 그런 예감? 믿음? 그 근거 없는 가느다란 한 줄기 희망이, 자꾸만 돌아서려던 나를 붙잡아 세웠었다.
그리고 그런 내 감은 적중했다. 약 4년 정도 지나자 우리에겐 평화기가 찾아왔고, 연애 때 알던 그 멋진 남자가 다시 돌아왔다.
우리의 진짜 행복한 결혼생활은 사실상 그때부터였다.
이후의 결혼생활은 정말 또 다른 세상이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내겐 신세계였다.
세상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이자, 보호자인 언제나 내 편, 내 사람. 영혼의 단짝이란 게 이런 걸까.
이후에도 안 싸운 건 아니었다. 중간중간 싸움이 일어났지만 이전처럼 심하지 않았다.
오래가지 않았고 화해도 곧잘 했다. 무엇보다 싸움 자체가 신혼 때만큼 자주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어느덧 결혼 11년 차……. 거짓말 같겠지만 우리는 연애할 때보다도 지금이 더 좋다.
사랑에도 단계가 있다면, 뭔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느낌이다.
앞으로 20년, 30년 차가 되면 또 어떻게 될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앞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지만 그때도 우린 계속 함께겠지? ...아마도?)
내가 정말 ‘사랑해’라는 말을 참 못하는데…… (심지어 우리 가족에게도 말이지!)
지금 나는 정말 남편을 사랑한다.
우리는 진짜 사랑하고 있다.